공공성 해치는 公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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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발전 노조의 파업이 지속되고 있다.발전 노조를 비롯한 공공노조는 우리나라 근로자 중 비교적 높은 보수와 고용안정을 누려온 기득권층에 속한다. 이런 그들이 지금 공공성을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만약 이번 파업이 우리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게 된다면 일자리 창출도 그만큼 지연되고, 민간부문의 근로자들과 그나마 노조의 보호막조차 없는 대다수의 근로자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발전 노조는 대승적 차원에서 조속히 업무에 복귀하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요구사항을 관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비효율적이고 낭비 요인이 많은 부문이 공공부문이다. 공공부문이 그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면 클수록 그 나라 경제의 생산성과 활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더 이상 학술적 논의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사실이다. 이 때문에 지금 구사회주의 국가들을 포함해 전세계 국가가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예외 없이 민영화와 공공부문 축소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지난 4년간 경제위기 극복과 경쟁력 회복을 위한 최우선 개혁 과제로 공공부문 개혁을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은 바로 공공부문이라는 그 사실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공조직은 속성상 성과보다 과정, 효율보다 형평을 중시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의사결정이 정치인과 관료에 의해 이뤄지고 경쟁과 퇴출의 압력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해도 되는 일을 두 사람이 하게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을 만들어 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관료조직이 장사하는 조직이 될 수 없다. 공공부문의 공익성 때문에 효율성만을 따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외의 오랜 경험은 공공성과 효율성이 결코 상충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요금, 같은 금액의 국민 세금을 투입하고도 훨씬 좋은 질의 공공서비스를 누리는 나라와 분야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를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통신·대중교통·화물운송·정유·의료같이 공익성이 높은 분야에서 많은 민간기업들이 국민 세금 신세를 지지 않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공공성은 공조직이 담당해야만 보장된다는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년에 수천억원의 국민 세금으로 연명하면서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는 후진국 수준의 철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무슨 공익인가. 비대한 독점 국영기업 체제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전력산업과 가스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가.전력이나 가스와 같이 중요한 국가 기반시설의 운영을 소수 정부 관리들의 의사결정에 맡겨 두는 것이 오히려 국가적으로 리스크가 더 클 수 있다. 국가 기간산업의 구조개편과 민영화 정책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정부 이전부터 추진돼 온 국책 과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정부가 새삼 들고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의 분위기는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을 계기로 민영화 문제를 마치 뜨거운 감자 다루듯 하고 있다. 가능하면 다음 정부로 넘겼으면 하는 눈치조차 보이고 있다. 또 일부 정치인은 민영화 없이 공공부문 개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 생각에 이들은 경제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기간산업의 구조개편과 민영화 같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럽지만 여야간 의견 차이가 크지 않은 국책 과제는 임기가 끝나가는 정부가 마무리짓고 차기 정부에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그 다음 정부에 누가 집권하더라도 정권 초기부터 또 다시 이 문제를 가지고 온 나라가 어수선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다음 정부로 넘길 것이 있고 넘겨서는 안될 것이 있다. 기간산업의 민영화 법안이야말로 지금 정부 임기 내에 처리해야 할 당위성이 가장 큰 개혁 과제라 할 수 있다.이번 파업 사태를 계기로 기간산업의 민영화 관련 법안이 지금 정부 임기 내에 처리되도록 여야가 진지하게 논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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