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 중국의 명사들이 가슴으로 전하는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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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 한 마디가 자녀의 인생을 바꾼다
사마광 외 지음, 장연 외 옮김, 명진출판, 250쪽, 9500원

아버지. 그만큼 부침이 심한 이름이 또 있을까. 가장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 아이들에게 삶의 지표를 만들어주거나 당신 스스로 지표가 돼야만 하는 아버지. 더 나아가 집단이나 국가 혹은 종교의 ‘머리’로, 권위의 표상이 되는 이름. 책임과 권위의 무거움은 때론 그 자리에 있는 아버지에게 감당키 힘든 버거움을 선사하고, 끊임없는 도전의 대상이 되며, 잘못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지고 가게 한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한없는 고독과 초라함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평가는 잠시 접도록 하자. 대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보는 시간을 마련해보자. 어쨌건 그들은 우리보다 한 세대를 더 살지 않았는가. 경험에 뿌리 박은 확실한 무엇과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켜켜이 쌓인 시간의 퇴적만으로도 그들의 세월 속으로 들어가보는 건 나쁜 일은 아닐 듯싶다.
『아버지의 말 한 마디가 자녀의 인생을 바꾼다』는 사마광·주회·증국번 등 중국 명사들이 후손에게 전해온 가서(家書), 이른바 가훈과 훈육서를 모아 놓은 책이다. ‘권위적’ 냄새가 풀풀 날 수도 있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따스함이 느껴지고 사소한 것에 신경 쓰는 아버지의 세심함에 코끝이 찡하기도 하다.

청나라 말기의 정치가인 증국번은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을 전장에서 보낸다. 물론 당대 제일공신이 됐고 가문은 그의 이름으로 영광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의 가서는 사소하고 개인적인 얘기들로 가득 차 있다. 가까운 친구와 다투고 화해한 얘기부터, 서양인에 대한 적대감까지. 일상을 진솔하게 나눈다. 가족의 편지가 뜸하면 혹시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 건 아닌지 먼저 걱정하는 모습에서는 소심한 가장의 모습까지 비친다.

그의 가서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아버지로서 일방적인 훈계를 피하고 쌍방향적인 대화를 유도해 나간다. 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자의 두려움까지 솔직히 말하는 아버지(혹은 형)에게 자식이나 아우는 당연히 자신의 걱정을 허물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그의 진솔함은 요즘 말로 치자면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이었던 셈이다. 또한 부드러운 리더십의 전형일 수도 있고. 그래서 그의 가문은 지난 200년간 8대에 걸쳐 최고의 성공을 일궈냈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에는 그의 삶을 강의하는 사설학원까지 생겨났을 정도라니까.

몇년 전 한국에서 소설『아버지』(김정현)가 크게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최근 중국에서 가서가 인기를 끄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로니컬한 건 가장 많은 독자층이 중년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자신을 향한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서도 마찬가지. 그것은 곧 자기를 향한 잠언이었다. 자신을 타산지석 삼아 더 낳은 삶을 살라는 ‘저무는 세대’의 마음이 애틋하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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