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첫 국민경선 D-5 제주는 지금 : 후보들 신발 닳도록 票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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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일 오후 7시 제주도 제주시 연동의 A횟집. 민주당 이인제(李仁濟)후보 캠프의 제주 조직책 朴모(33)씨가 한화갑(韓和甲)후보의 핵심조직원 金모씨(가명)와 전화통화 중이다.

오는 9일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치러지는 대선후보 경선의 유권자 선거인단을 상대방이 얼마나 확보했는지 탐색하려는 것이다.

"우린 생각보다 안된쪄(안됐습니다). 진짜 조꾸라(작다). 그쪽은 몇명 됐수까, 막판에(신청서가) 엄청 더 들어갔다는데."(朴씨)

"아직 확인 안됐수다."(金씨)

"확인 안돼? 말이 되는 소리꽝(소립니까)."(朴씨)

두 사람은 민주당 제주지역 당직자들이고 친한 사이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후보를 위해 앓는 소리를 하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보다 적은 인구 54만명의 제주도가 선거열풍으로 달아올랐다. 제주도의 선거인단 숫자는 총 7백92명. 비당원(非黨員)이었던 3백78명이 컴퓨터 추첨으로 선정됐다. 기존 대의원은 1백76명, 새로 뽑힌 당원 대의원이 2백38명이다.

'최초의 승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민주당 차기 주자들은 제주도를 신발이 닳을 정도로 순회하고 있다.

정동영(鄭東泳)후보는 지난 1일 오후 북제주군의 외딴 섬 우도까지 찾아갔다. "표와 상관없이 정성을 다한다는 걸 제주도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유종근(柳鍾根)후보를 홍보하는 노란색 버스도 연일 제주도를 돌고 있다. 3일에는 이인제·김중권(金重權)후보가 찾았다. 밑바닥은 '펄펄' 끓는다.

2일 오전 2시 연동의 뉴크라운호텔. 정동영 후보를 돕는 대학교수·건설회사 사장·조직담당자 등 5~6명이 심야 대책회의를 했다.

이곳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인 구제주 이도1동 자이언트호텔에 차려진 한화갑 후보 상황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韓후보의 채관배(蔡官培)보좌역은 "전부 새벽에야 퇴근한다"고 말했다. 각 캠프 조직담당자들의 대의원 공략은 무차별적이다.

노무현(盧武鉉)후보측 김용균(金勇均·제주도지부 청년국장)씨는 "하는 일이 영업사원과 똑같다"면서 "대의원으로 뽑힌 사람들에게 전화를 거는데 휴대폰 요금만 수십만원"이라고 했다.

간호사 B씨(30·여)는 이번에 국민선거인단으로 뽑혔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보험회사원이 멋대로 신청했는데 당첨된 것이다. 하지만 B씨는 "모 후보측의 전화설득을 받고 투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역시 선거인단에 뽑힌 김정조(40)씨는 "하루에 열번 정도 전화가 걸려오는데 하도 귀찮아 이제는 '운전 중'이라는 핑계를 대고 끊는다"고 했다.

물량 공세 조짐도 보인다. 한 지구당 고위 간부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후보와 따로 식사를 했다"면서 "금품제공은 거의 없는 수준이지만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현재의 판세는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각 후보진영의 분석을 종합하면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이인제·한화갑·노무현·정동영 후보가 강세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인제 후보가 박빙의 우세라는 것이 현지 조직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화갑 후보는 서귀포·남제주 쪽과 구당료들의 지지세가 높다. 노무현 후보도 "국민선거인단 중 열성 지지자들이 많다"는 평가다.

정동영 후보는 최근 지역언론의 제주도민 상대 여론조사에서 2위를 했는데 "선거인단에도 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추세라면 약 30%(2백50표 내외)를 득표하면 1위라고 한다.

제주시 지구당 장성철(張性喆)부위원장은 "바닥이 좁아 선거인단이 속마음을 숨기고 있어 이변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주=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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