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차이 알아야 갈등 줄인다 세계화시대 필독해야 할 문화인류학 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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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국제 교류가 늘어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게 된다. 그러나 정작 남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그 나라 말을 잘 한다고 해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홀의 『숨겨진 차원』은 출판된 지 40년이 가깝고 그동안 국내에서도 몇번 번역됐었지만 여전히 문화인류학 지침서로서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쉽게 설명해 준다.

이번에 한길사가 새로 번역해 펴낸 이 책은 홀의 문화인류학 4부작의 마지막 권으로 홀의 사상 전체를 하나의 큰 틀 속에서 이해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인체의 연장으로서 공간을 만들고, 사용하며 이를 통해 개별적인 고유한 문화를 만들 뿐 아니라 동시에 스스로 만든 공간과 문화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동물은 다른 동물과의 사이에 도주거리(자기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최소거리)를 절대적인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지키지만 인간은 벽을 만들고 문을 만드는 등 공간 구성을 통해 만들어 낸다.

우리가 무심히 여기는 공간적인 반응들-예를 들면 엘리베이터에 혼자 서 있는데 다음에 탄 사람이 일정한 거리 이상 가까이 다가서면 느끼는 긴장감 등-을 구체적인 거리로 나타낸 자료들은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특히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다.

저자는 또 아랍권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나타내는 행동을 서구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워 발생하는 문제를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아랍인들은 공공장소에서 서로 밀치거나 부딪치는 것을 무례함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것. 서로 스치기만 해도 "실례합니다"를 계속 말해야 하는 서구사람들에게 그런 장소에서의 경험은 거의 폭력에 노출된 느낌인 셈이다.

저자는 또 같은 서구 문화권인 독일인과 문화적인 뿌리가 같다고 여겨지는 미국인·영국인이 단순히 방문을 열어 두고 닫아 두는 문제를 가지고 갈등을 빚는 예를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사소한 문제로도 서로 무례하다고 느끼거나 불쾌해 한다는 것.

이런 사례들을 통해 빠른 세계화로 각국 사람들의 교류가 잦아지면서,동시에 마찰과 갈등도 많아지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된다. 결국 서로 호의를 가졌어도 문화적 차이에 따른 남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언짢아하거나 화를 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데는 개별적인 문화에 따른 특유한 행동규범·공간사용법 등 '숨겨진 차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깨닫게 해주는 내용들이다.

이 책에 앞서 번역된 에드워드 홀의 문화인류학 연작 『침묵의 언어』『문화를 넘어서』 『생명의 춤』도 함께 읽으면 문화의 차이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또 남의 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가 쉽게 다가온다.

신혜경 건축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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