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도 막아낸 영원한 청년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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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십대 때 서유석의 노래를 처음 들은 곳이 광화문 네 거리 교육문화회관이었는데 31년이 지나 다시 그의 노래를 들은 곳 역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오페라 하우스다.

대중은 오리지널 서유석보다 오히려 유사품에 더 익숙해져 있다. 개그맨치고 그의 발성 흉내를 안 내 본 자가 드문 까닭이다.

이름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공부보다는 운동을 더 좋아했다.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까지 지냈으니 운동도 장난으로 한 게 아니다. 아르바이트로 학교 앞 주점에서 영업 부장을 하던 시절 취미 삼아 부른 노래를 듣고 당시 손님으로 왔던 구봉서씨가 그를 방송사 PD에게 추천한 게 '사건'의 발단이다.

실상 그는 노래도 운동처럼 한 사람이다. 방송가에서 그는 정의감 넘치는 아웃 사이더의 이미지로 버텨왔다. '건전한 신체에 깃들인 건전한 정신'은 그의 음악 세계까지도 관통하는 규범이다. 헤르만 헤세의 시에 곡을 붙인 '아름다운 사람'에서 독도 사랑을 담은 '홀로 아리랑'에 이르기까지 그는 노래와 삶이 일치하는 가수로 살아왔다.

오페라 하우스는 흡사 도심 속의 낙도 분교 분위기다. 거기선 50대가 5학년으로 불린다. 그는 3학년부터 6학년까지 함께 수업하는 교실의 반장, 혹은 담임 선생님이다.

가요방 노래 목록에 '가거라 삼팔선' 바로 밑에 들어있는 '가는 세월'은 1977년 발표 당시 14주 연속 가요 순위 1위를 할 정도로 대히트했다. 객석의 손님들은 이 노래가 나오자 저마다 따라 부르며 마치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마지막 앙코르 역시 '가는 세월'이었다. 나 역시 잊고 산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이 뜨거워졌다.

세월은 갔지만 그의 목소리나 창법, 경쾌한 걸음걸이 등은 달라지지 않았다. "계급장이 좀 변했죠" 그러나 그가 계급이라고 표현한 얼굴의 주름살조차도 예전 그대로인 듯하다. 발산하는 에너지가 도저히 그 나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여전히 펄떡펄떡 뛰는 청년정신이 있었다.

라디오 '푸른 신호등'을 17년 6개월 동안 진행했고 지금 맡고 있는 교통방송의 'TBS 대행진' 또한 5년 가까이 맡고 있으니 교통문제에 관한 한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다. 그는 써 준 원고를 읽는 진행자가 아니라 발로 뛰는 진행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노래에 목숨 건 사람이라기보다 노래를 통해 사회가 젊고 맑게 변하기를 꿈꾸는 사회 운동가다. "노래로 사랑받은 만큼 노래로 보답해야죠." 그는 사랑을 테마로 세대를 아우르는 노래를 만들고 싶단다. 음반 데뷔곡이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주제곡 '사랑의 테마'였다고 하니 그는 30년 넘게 사랑을 붙들고 씨름하는 형국이다.

그가 믿는 사랑은 별 게 아니다. 그저 '입장 바꿔 생각하기'다. 곱게 늙기도 쉽지 않지만 곧게 늙기는 더 어려운 게 세상인데 그는 참 곱게, 그리고 곧게 늙는 중이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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