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늘었어도 돈벌이 신통찮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 한국영화의 자신감을 새로 보여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러 밀려든 관객들. [중앙포토]

서울예대 강한섭 교수는 1998년 '쉬리'의 성공 이후 승승장구해온 한국 영화계에 쓴소리를 자주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최근에도 충무로의 부실한 산업구조를 꼬집는 글을 한 영화전문지에 게재했다. 한마디로 '한국영화 붐은 착시현상'이라는 것. 시장점유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으나 비디오.DVD시장 몰락, 극장들의 관람료 할인 경쟁 등 우리 영화계의 실속없는 성장을 비판했다.

영화 투자.제작자인 IM픽쳐스가 10일 발표한 '2004년 영화시장 분석' 보고서를 보면 강 교수의 지적에 상당 부분 공감이 간다. 연초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가 편당 관객 1000만명 시대를 열며 활기차게 시작한 올 우리 영화계는 처음으로 관객 점유율 50%(서울 기준)를 돌파하며 기세를 이어갔으나 수익성은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급증하는 제작비, 비디오 등 부가시장의 침체 등으로 한국영화가 계속 크려면 해외시장 개척이 필수인 것으로 조사됐다.

◆ 시장점유율 50%대 유지=지난 5일까지 관객 증가세를 놓고 볼 때 올해 전체 관객은 지난해보다 1000만명이 늘어난 1억3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중 한국영화 관객은 7300만명 정도. 서울을 기준으로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2002년 45%, 2003년 49%에 이어 올해 90년대 이후 최고 수치인 56%를 기록했다. 전국을 놓고 볼 때도 2001년, 2003년에 이어 세 번째로 5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를 보는 사람이 2000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 편당 평균 관객도 30만명을 처음으로 넘어섰으며, 올해 흥행작 10위 안에도 한국영화가 다섯 편 올랐다.

◆ 외형 성장 못 따른 내실=관객 증가, 개봉 편수 확대 등으로 영화시장 전체 규모도 지난해보다 18% 확대됐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투자수익은 지난해 대비 32% 줄었다. 총 241억원의 수익을 올렸으나 해외 판매를 제외한 국내 매출은 41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편당 6억원 정도 손해를 본 셈. 2003년 적자 총액은 15억원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편당 제작비가 크게 늘어난 반면 관객은 그만큼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는 편당 4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열두 편의 영화가 30억원 이상을 벌었으나 올해에는 다섯 편에 그쳤다. 수익 작품의 하향 평준화가 뚜렷한 한해였다.

◆ 활로는 수출 증대=영화계 전체를 위협하는 요소는 비디오 시장의 위축이다. 올해 비디오.DVD 매출액은 183억원. 지난해보다 14% 감소했다. 온라인 불법 다운로드의 영향이 컸다. 90년대 중간까지 충무로를 떠받쳤던 비디오 시장의 몰락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다행인 점은 수출의 증가.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달콤한 인생'이 각각 일본에 32억원, 38억원에 팔리는 등 올해 한국영화 수출액은 지난해보다 78% 늘어난 660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올드보이''빈집'이 베를린.칸.베니스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하며 한국영화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최근 '2004 베이징 한국영화제'를 다녀온 LJ필름 이승재 대표는 "갈수록 높아지는 제작비를 고려할 때 외국시장의 개척은 이제 충무로의 선택조건이 아닌 필수조건"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