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정리 등 법률서비스 황금어장 "열려라, 한국시장" 세계 로펌들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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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해 11월 말.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S로펌(법률회사) 변호사 4명은 서울 신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들은 보름간 서울에 머무르면서 한 건의 국내기업 국제 입찰에서 H사의 법률 자문을 맡아 낙찰받도록 도와줬고, 두건의 국제 중재사건 협상을 한 뒤 돌아갔다. 이들은 '두둑한' 법률 자문료를 받았지만 한국 정부에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았다.

아직 한국 법률시장이 개방되지 않아 서울에 사무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처럼 한국에서 '떴다방'식 법률자문을 해주는 외국 로펌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 정리, 인수·합병(M&A), 부실채권 정리,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 등으로 법률시장 규모가 커지자 외국 법조계의 조기 시장 개방 압력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법률서비스 황금시장=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법률서비스가 필요한 분야가 대폭 늘었다. 대우차·하이닉스·현대투신 등 국내 부실기업의 해외매각 때 대부분의 인수자측은 외국과 국내 로펌을 공동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있다.

M&A뿐 아니라 그 이후 생기는 분쟁이나 중재사건도 늘었고, 부실채권 정리, 외국인 투자 유치도 많아졌다.

미국 로펌의 홍콩 지사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뉴욕에서 근무하다 한국기업 자문을 위해 홍콩으로 거점을 옮겼다"면서 "일부 미국·영국계 로펌의 홍콩·싱가포르 지사 업무 중 30~40%는 한국과 관련된 일"이라고 말했다.

◇거세지는 조기 개방 압력=데이비드 매킨토시 영국변협 회장 등 대표단 15명은 한국 법률시장의 조기 개방을 촉구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관계기사 37면>

이들은 지난 18일 대한변협과 '로펌의 발전'을 놓고 세미나도 열었다.

또 대법원·법무부 관계자들을 만나 법률시장을 빨리 열면 외국기업의 한국 투자 유치는 물론 한국 법조계의 국제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속 변호사만 1천5백여명인 미국 거대 로펌 '화이트 & 케이스'의 듀안 월 대표도 지난 3일 방한해 국내시장을 둘러봤다.

그는 "한국 기업의 국제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 법률시장에 진입하려고 미국 로펌들이 경쟁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가오는 시장 개방과 국내 로펌의 대응=국내 법조계는 한국 스스로 개방하지 않더라도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 협상에 따라 늦어도 2006년까지는 개방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한변협은 올 6월까지 법조계 의견을 수렴해 미국과 유럽연합(EU)측에 한국의 요구사항을 전달할 예정이다.

대한변협 김갑유(국제 이사)변호사는 "개방은 불가피하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시장 개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외국 로펌의 한국 변호사 고용과 합작 회사 설립 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다.

<표 참조>

변호사만 1천명이 넘는 외국 대형 로펌에 대항하기 위해 국내 로펌들은 소속 변호사들의 경쟁력을 기르고 회사 규모를 키우는 일이 시급해졌다.

지난해 국내 4대 로펌 중 세종(신&김)이 열린합동과, 한미(리&고)가 광장과 합병(합병회사 이름 광장)해 덩치를 크게 불렸다.

김&장도 최근 백창훈 전 사법연수원 교수 등 16명을 영입해 변호사 수를 2백24명으로, 태평양(배·김&리)은 김영철 전 법무연수원장 등 14명을 영입, 1백15명으로 늘렸다.

김동섭·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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