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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안정-기회와도전<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테러전과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을 위한 대량 살상무기 및 재래식 무기의 위협 감소를 재차 제기하면서도 주민의 삶의 질을 외면한 북한 정권을 '악'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자유와 인권의 중요성을 반복해 강조했다.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노력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지난 4년동안의 정책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와 함께 북한의 적극적인 정책변화를 촉구했다.

우리 정부의 발표대로 한·미 정상회담이 이같은 현안에 대한 양국의 이견을 해소했다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새로운 시각에서 총체적인 재검토가 이뤄지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봉착했다.

그동안 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추진됐지만 근본적으로는 북한 정권, 특히 최고지도자에게 초점을 두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실현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남북관계의 모든 명운을 걸다시피했다. 수령유일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실정을 감안할 때 수긍할 수 있는 측면이 있으나 수단이 목표화되고 또한 그같이 전도된 목표 달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조급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대북정책은 방향을 상실하고 결과적으로 남북관계의 진정한 개선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대북정책의 성패는 북한의 변화 여부에 달려 있다. 그같은 변화의 결과로서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궁극적으로 자유와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사회의 변화는 북한 정권의 변화 없이는 기대하기 어려우며, 정권의 변화없는 변화를 변화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햇볕정책이 그 의도와 달리 변화없는 정권의 정당성을 제고하고 공고화하는데 기여했다면 이제 그같은 정책은 과감히 수정돼야 한다. 더구나 그러한 햇볕정책의 결과 우리사회가 내부적으로 통일·반통일, 보수·진보, 민족자주·외세의존 등 이분법적인 균열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된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5차 장관급회담에서 남북이 합의한 사안을 이행할 것을 천명하고 이를 북한측에 촉구했다. 그러나 새로운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이 이러한 우리 정부의 희망대로 당국간 회담을 비롯해 각종 협력사업을 재가동하는데 동의할 것 같지는 않다.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북한 나름대로 분석과 평가, 그리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을 것이나 북한으로서도 선뜻 대화에 나서거나 정권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조치들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상황인식과 판단에 따라서는 남북관계의 경색이나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기존의 당근 위주의 접근방식에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배합한 신축적인 정책과 전략을 수립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남북경협의 확대와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특히 대북지원과 관련해 미국과 일본 등 서구자본주의국가들과의 적극적인 협력틀을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는 압박수단 역시 단계별로 제시함으로써 북한의 선택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미 대량살상무기와 재래식무기의 위협감소를 위해 한반도 안전을 보장하는 동맹국이자 대테러전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과의 공조틀을 확인한 바 있지만 북한이 진정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토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대북정책추진의 사령탑인 NSC의 구조 및 인적 개편과 실질적인 활성화가 이뤄져야 한다.

햇볕정책은 자유와 인권의 신장을 위해 오랫동안 민주화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金대통령의 철학과 비전이 담긴 정책이었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미 노벨평화상을 수여함으로써 그 공로를 인정했다. 이같은 정책이 대통령의 임기와 더불어 폐기되지 않고 정권을 이어 소기의 성과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추진구도와 전략이 상황에 맞게 신축적으로 개편되고 운영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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