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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세일즈 한지붕 근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한 보험사 지점에 이공계 영재의 산실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네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흥국생명 서울 역삼동 센트럴지점의 김관덕(29)지점장, 이준성(29)매니저, 이동석(32)·유승무(32)설계사가 주인공. 金지점장과 柳설계사는 90학번으로 산업공학을 전공했고, 李매니저는 같은 과 1년 후배다. 李설계사는 88학번으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이중 3명은 석사 과정까지 마쳤다.

유학을 준비하거나 벤처기업에서 근무하던 이들이 보험 세일즈맨으로 변신한 가장 큰 이유는 노력한 만큼 보수가 나오는 급여 체계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

金지점장이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해외 유학을 결심하고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공군사관학교 전임강사로 근무하던 시절 대학 후배로부터 종신보험 가입 제의를 받은 게 계기였다.

"종신보험 영업의 보수체계를 연구해 보니 속된 말로 '되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문 등에서 종신보험 설계사로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의 얘기를 보면서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2000년 8월 외국계 보험사에 입사했습니다."

그의 결정에 부인과 처가가 반대한 것은 물론, 특히 홀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보험맨이 된 후 만나도 대화 한마디 안하는 관계가 6개월간 지속됐다고 한다. 하지만 종신보험에 매료된 그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첫 직장에서 1년여 동안 매주 세건 이상의 계약 실적을 올리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둔 그는 지난해 9월 흥국생명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적인 보험마케팅 방법론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해 10월엔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지점장이 된 그는 조직을 키우며 벤처회사 등에 근무하던 세명을 설득해 보험맨으로 탈바꿈시켰다.

李설계사는 "종신보험 설계사인 손위 처남이 뜻밖에 경제적·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전업을 고민하던 차에 金지점장의 권유로 지난해 11월 결심하게 됐다"며 "보험 영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전문직으로 수치 개념이 밝은 이공계생에게 유리한 분야"라고 말했다.

柳설계사도 비슷한 생각으로 지난해 12월 입사했고, 전직을 후회한 적은 아직 없다고 한다.

현재 金지점장의 월수입은 1천만원을 넘는다. 다른 세명은 경력이 많지 않은 관계로 2백50만~5백만원 수준이다.

요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과 관련, 주변에서 비판을 받지 않느냐는 지적에 金지점장은 나름대로의 '이공계생 역할론'을 주장했다. 어느 분야에 진출해도 이공계생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므로 이공계생은 연구소·생산현장에 가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종신보험 설계사=보험 가입자가 사망할 때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설계된 종신보험을 판매하며, 기본급(보통 월 2백만원 이하)에 보험 유치 실적에 따른 수당(보험료의 20~40%)을 추가로 받는다.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6~9월) 전체 생명보험 설계사의 월급여 수준은 2백14만원이었으나 대부분 종신보험만 파는 푸르덴셜생명 설계사의 경우는 8백30만원이었다.

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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