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원조 세계로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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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21일 오후 신세계 이마트 가양점. "외국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뭔가." "백화점 못지 않은 인테리어를 갖췄는데 가격경쟁력은 어떻게 확보하나."

쉴 틈 없이 질문을 해대는 이들은 한국의 산업자원부격인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유통경제연구소와 일본 아사히그룹 유통연구소의 연구진들로 이마트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한국업체들이 일본의 백화점 경영을 배우러 쫓아다니던 70, 80년대와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20일에는 일본 4위 소매점 업체인 세이유 관계자 40여명이 이마트를 다녀갔다.

정수기 임대사업·온라인 게임·PC방 등 한국에서 시작된 마케팅·서비스·제품이 세계시장으로 발을 넓혀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제품개발로 글로벌 시장의 틈새를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로 뻗는 한국식 마케팅=정수기 제조·판매를 하다 1998년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 등의 임대사업을 시작해 지난해 5천2백억원의 매출을 올린 웅진코웨이 개발은 오는 3월 코웨이저팬을 설립하고 일본시장 공략에 나선다. 일본에서 인기를 누리던 정수기를 뒤늦게 들여왔던 한국에서 오히려 정수기 임대사업을 일본에 역수출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후 급격히 늘었던 PC방도 세계적으로 한국이 원조다. 이후 PC방은 미국·중국·일본에서 수백곳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국내 7백개 PC방 체인점을 갖고 있는 싸이버리아㈜는 일본에 28곳의 가맹점을 확보했다. 또 최근 프랑스 게임협회와 계약을 하고 오는 8월 파리에 싸이버리아 1호점을 개설하기로 했다.

96년 '바람의 나라'는 세계 온라인게임의 원조격이다. 이후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미국·대만·일본으로 시장을 넓혀가며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액토즈소프트의 '천년' 등은 중국 시장에서 3위권에 오르며 온라인게임 왕국의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컴퓨터 서적 전문업체 영진닷컴은 국내에서 출간된 각종 소프트웨어 활용서를 영어로 번역해 미국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이외에도 농심의 신라면·동양제과의 초코파이 등은 일본·중국 업체들이 제품 디자인과 제품명까지 비슷하게 만들 정도로 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어=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는 한국형 마케팅·서비스가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선 기획·마케팅기법 등의 리뉴얼 작업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원 고정민 부장은 "해외진출에 성공한 기업의 경우 아직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기술보다는 단발성 아이디어를 기초로 삼은 사례가 많다"며 "확고부동한 점유율을 가지려면 마케팅 기법·기술개발이 더 진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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