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쭉빵빵' 배우자를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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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는 진부한 얘기를 진부하지 않게 끌고가는 연출력이 뛰어난 영화다. "결국 이 얘기를 하려고 했군"하는 감독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면서도 메시지를 풀어가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는 주장이다. 윤리·도덕 교과서에서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귀를 즐겁게 한다. 나아가 삶에 대한 자신감마저 심어준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는 패럴리(피터·바비)형제의 신작이다. 전작 '덤 앤 더머''킹핀''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등에서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 이른바 '화장실 유머'를 끌어들인 주역으로 꼽히는 그들이 이번엔 농담의 수위를 낮추고 일상의 모습에 보다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정액·오줌 따위의 불결한 소재를 삭제하고, 대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을 스크린으로 초대한 것은 그 때문.

그렇지만 일상을 비트는 패럴리 형제 특유의 비주류적 감각은 여전하다. 엽기적 상상력이 군데군데 튀어나온다. 다만 못난 인생이라도 이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포용성이 전작들보다 훨씬 넓어졌다.

원제는 '섈로 할'(Shallow Hal)이다. '천박한 할'이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임종의 자리에서 남긴 한마디, 즉 "반드시 미인을 만나라"는 유언을 금과옥조로 삼아 오직 '쭉쭉빵빵'한 배우자를 찾아헤매는 할(잭 블랙)의 사랑찾기가 줄거리다.

모든 여성을 얼굴과 몸매로만 재단하는 할.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심리 상담사의 최면술에 빠져든 그는 여성의 외모를 거꾸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절세 가인의 로즈마리(기네스 팰트로)가 나타난다. 타인에겐 코뿔소처럼 보이는 1백40㎏의 거구지만 그에게는 천하 제일의 여인인 것.

이후 영화는 로즈마리의 정체를 아는 주변인과 눈에 콩깍지가 낀 할의 대치가 중심축을 이룬다. 그들이 다투는 이유를 꿰뚫고 있는 관객에겐 더할 나위 없는 구경거리인 것이다.

연기할 때마다 네 시간씩 특수분장을 하며 거대한 '뚱녀'로 변신한 팰트로의 1인 2역이 재미있다. 갸날픈 체구(할의 눈에 비친 것이지만)에도 1ℓ짜리 콜라를 단숨에 들이키고,낙하산만한 팬티를 걸쳐 입고 등등. 그녀가 앉은 의자는 힘없이 망가지고,그녀가 다이빙을 하면 수영장의 물이 산처럼 솟아오른다.

주변 캐릭터들도 생생하다. 양념형 조연들이 아닌 것.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할의 친구, 척추 불구자임에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로즈마리의 친구 등, 영화 속 인물들은 외모에 관한 일반인의 편견을 유쾌하게 부셔버린다. 상투적 결말이 걸리기도 하지만 영화는 힘차게 외친다. "껍데기는 가라". 23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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