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300만마리 시대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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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몇해 전 영국을 방문했을 때다. 만원 지하철에 대형견(犬)인 '로트바일러'가 탔다.같은 칸에 있던 사람들은 전혀 불편한 기색 없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개 주인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개 입에 마스크를 씌우고 두손으로 단단히 개를 붙들고 있었다. 기르는 이나 주변사람 모두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이방인 수의사인 나에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개를 가족과 동일시하는 유럽에서는 개가 들어가지 못할 곳은 거의 없다. 간혹 고급 레스토랑이나 박물관의 경우 개 출입금지 팻말이 있으면 개를 따로 보관소에 맡겨두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 곳이나 거의 무사통과할 수 있는 데 따른 의무도 많다. 밖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 용변을 치워야 하는 것은 기본상식으로 인식돼 있다. 이를 규정한 법도 있다.

우리나라도 애완견 2백50만마리 시대를 맞았다. 고양이·새·햄스터·페릿·거북이 등까지 합치면 애완동물 수가 3백만마리에 육박한다. 이제 애완동물은 우리 일상의 일부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자기 개의 나쁜 습관을 아랑곳 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든지, 서로 자신의 애완동물이 예쁘다며 승강이를 벌이고 주먹다짐까지 하는 일이 심심치 않다. 그러면서도 관리에는 소홀하다. 예방주사 접종을 게을리 하거나, 제대로 돌보지 않아 피부병을 앓게 된 개가 온 가족에게 병을 전염시켜 모두 병원신세를 지는 가정도 많다.

더욱 문제인 것은 귀엽고 예쁠 때만 귀여워하고 병들고 늙으면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행태다. 주인에게 버림받는 개나 고양이 문제는 이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가 지난해 잡은 동물은 모두 3천2백79마리로 전년의 2천18마리에 비해 62%나 늘어났다고 한다. 지난 해 광주시내 주택가와 야산 등지를 배회하다 전남대 동물보호소에 수용된 개도 85마리나 됐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주인의 품으로 돌아간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전남대 동물보호소에 수용됐다가 주인을 찾은 개는 오직 4마리 뿐일 정도다. 서울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사랑으로 동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으로 동물을 기른다는 좋은 증거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기본적인 에티켓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 동물에 대한 책임의식도 가져야 한다. 아이를 기르는 심정으로 사망할 때까지 주인이자 보호자로서 책임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애완동물을 판매하는 가게들도 돈벌이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야 할 것이다.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는 이들도 치장한 애완견에 무턱대고 눈살을 찌푸리거나 비아냥거려서는 안될 것이다.

귀족놀음으로 애견을 기르기 시작한 서양에서는 애완동물 문화가 일찍 성숙했다. 그러나 우리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 마저도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유행성 사고와 이기적 행동,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 탓에 생명존중의 가치마저 훼손되고 있다.'애완동물 3백만시대'를 살아가는 나라답게 매너있는 애완동물문화를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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