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화 시대의 인재 양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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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예전에는 군에서, 특히 훈련소에서 지급하는 군복과 군화가 맞지 않아 곤혹스러워하는 신병들이 많았다.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조교와 고참들이 몸을 거기에 맞춰야 한다고 윽박지르곤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외출 때 민간업소에서 고쳐 입기도 하고 약삭빠르고 폼잡기 좋아하는 친구들은 아예 미제군복과 군화를 구해와 착용하기도 했다.

군대의 사정은 그후 상당히 개선된 것 같지만 교육쪽에서는 아직도 이와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듯하다. 교육 수요자들의 요구와 취향은 무시한 채 정부는 획일적이고 품질이 좋지 않은 교육상품을 공급하며 강요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배급품, 즉 공교육을 믿지 못하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과외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으며 이민이나 조기 해외유학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났다.

서구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 일본·중국과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학생들, 특히 남학생들은 군대와 교육면의 불리한 환경 때문에 우수한 인재로 뻗어나가기가 어렵게 돼 있다. 공교육의 실패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일본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나 이들에게는 병역의무가 없다. 따라서 청년들은 일찍부터 자기가 원하는 전문분야를 택해 중단없이 정진해 나갈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징집제에다 의무복무기간이 3년이나 된다고 하지만 젊은 인력이 풍부해 신축적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공계든 인문사회계든 우수한 남학생들은 군대에 가지 않고 공부나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를 보아도 우리의 교육환경 또는 교육면의 경쟁력이 일본이나 중국에 뒤진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중학교 교사 1인당 학생수는 24.2명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많고, 교육비 중 사교육비의 비중은 일본의 두배에 이르며, 대학교육의 국가경쟁력 기여도에 있어서는 중국보다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글로벌화와 지식정보화의 시대다. 이는 곧 한 국가나 민족이 경쟁에서 낙후되지 않고 살아남자면 다양한 분야에서 극히 우수한 인재들을 키워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와 여건의 변화에 맞춰 우리의 교육과 군대제도도 마땅히 변해야 하는 것인데도 이 두 분야는 국민정서나 여론을 앞세워 성역을 구축하고 현상유지를 고집하고 있어서 문제다.

보다 못해 이제는 경제부총리와 한국개발연구원까지 나서서 교육평준화의 수정과 기여입학제의 허용을 주장해 보았지만 강력하게 반발하는 교육당국의 옹고집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평등만 강조하다 공교육을 파탄에까지 몰고간 것이 확연해진 지금 시점에서는 당국자들이 겸허하게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들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시장원리를 매도할 것이 아니라 사립학교에 관해서는 투명성 등 큰 원칙만을 세워주고 대폭적인 자율성을 보장해 공교육을 보완토록 해야 하겠다.

징집제도 또한 우수한 인적자원의 양성이라는 관점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의무복무기간의 단축이나 병역특례제도의 대폭적인 확대부터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인구증가세의 감소 때문에 병역자원이 부족하다거나 예산문제·군사력 약화 등을 이유로 반대가 거셀 것은 당연하지만,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현대전의 성격을 생각할 때 얼마든지 보완책을 강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병무청의 사이버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의 네티즌들이 병역의무를 지원병제로 전환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는 점도 참고가 돼야 할 것이다.

현재의 교육과 징집제도는 과거 대량생산의 산업사회와 재래전 방식의 냉전체제 아래서는 필요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기여한 바 또한 작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대와 여건이 바뀐 오늘날에 와서까지 변화를 거부해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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