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이창호의 급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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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준결승 2국> 
○·추쥔 8단 ●·이창호 9단

제 3 보

제3보(30~38)=추쥔 8단의 얼굴이 평온하다. 어딘지 수줍은 느낌의 추쥔이지만 바둑은 그의 인생이고 이창호는 어릴 때부터 전설이었다. 그래서 ‘이창호’란 인물과 마주 앉으면 추쥔은 더욱 행복한 얼굴이 된다. 30은 편안한 수. 다른 큰 곳도 많지만 최대한 두텁게 두었다. 그만큼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고 마음속의 기운도 느릿하게 흐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는 이창호 9단의 33에서 불에 덴 듯 놀라고 만다. 추쥔은 문득 이창호 쪽을 한 번 본다. 이창호가 이처럼 격렬하고 칼칼한 바둑이었던가. 33은 미생마 근처에서 싸우지 말라는 기리(棋理)에도 어긋난다. 추쥔은 34, 36의 강수로 맞받았다. 사실은 물러설 길도 없다. ‘참고도 1’ 백1은 2의 절단. 흑 A, B가 모두 선수여서 바로 수가 난다. 어려운 대목이지만 이창호 9단은 그리 장고하지 않고 있다. 37로 돌파하는 그의 손길은 느릿하지만 가차 없다.

추쥔은 고개를 파묻고 장고하더니 38이란 최강수를 꺼내 들었다. 38이 뚝 떨어지자 검토실에서 잠시 소요가 일어났다. ‘참고도 2’는 흑이 안 된다. 죽으면 끝이다. 흑엔 무슨 수가 있단 말인가. 추쥔의 맥박이 빨라졌다. 이창호 9단도 얼굴에 엷게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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