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는'초심' 개그우먼 김 미 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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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오래 전에 그녀와 같은 동네에 산 적이 있다. 물론 서로 인사가 없던 시절이다. 가게에 들렀다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자를 만났는데 뜻밖에도 김미화였다. 두 가지 사실이 놀라웠다.
하나는 그녀의 키가 TV에서 본 것보다 훨씬 작았다(1m53㎝)는 것과 도대체 연예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복장과 태도가 소탈하다는 것. 데뷔한 지 스무 해가 가까워오는 지금도 그 두 가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인기도, 수입도, 연예계에서의 위상 변화도 그녀의 초심을 흔들진 못한 듯하다. 나이 들수록 옷은 편한 게 좋고 사람은 예의 바른 쪽이 좋다더니 그녀가 바로 그렇다. 그녀의 인생을 반으로 뚝 자르면 그 한쪽은 차별의 역사다. 남녀 차별은 기본이고 빈부(달동네 출신), 학력(실업계 여상 출신), 용모(작은 키에 큰 입), 어느 하나 제대로 대우 받을 요소가 없었다.
이 정도면 세상에 한을 품어봄직도 한데 설사 그럴지는 몰라도 그 독을 내뿜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편견의 세상을 넉넉하게 포용함으로써 보은(報恩)이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에 복수하는 길이라는 걸 만방에 증언했다.
그녀를 한낱 '웃기는 여자'라고 얕잡아 보는 건 실수하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쉼 없이 연구하는 코미디 아티스트다. 새로운 웃음을 창조하기 위해 그녀는 부단히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실험한다. 늦은 밤 방송되던 코미디 세상만사의 '이 밤의 끝을 잡고'나 지금 코미디 패권주자인 '개그 콘서트'가 그녀의 아이디어의 산물임은 이미 방송가에 공인된 사실이다.
김미화에게 코미디의 포인트(연기할 때 그녀의 발음으로는 뽀인트)가 무어냐고 물었다."시대의 흐름을 알아차리는 것, 나아가 시대를 순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죠." 거창하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코미디를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살아온 이력과 살고 있는 환경이 피해망상을 부추기는 걸까. 실컷 웃고 나서 딴 소리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녀가 평생 직업으로 택한 코미디에도 전문성과 팀 스피릿(팀 정신)는 필수적이라고 그녀는 당차게 요체를 잡아낸다.
그녀의 첫 히트작은 '쇼 비디오 자키'의 쓰리랑 부부다. 일자 눈썹에 야구 방망이를 든 순악질 여사의 이미지를 기억할 것이다. TV 밖에서의 그녀의 행적을 보면 그녀는 악질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인터넷에서 김미화를 클릭하면 선행하여 표창 받은 횟수가 출연한 프로그램 리스트와 맞먹을 정도다.
그녀는 만학도다. 현재 성균관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 중이다. 그저 졸업장 따려고 다니는 게 아님은 흘낏 그녀의 출석부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녀에겐 인생의 마스터 플랜이 있는 것이다. 이름값을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오죽 많은가.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던 것을 오히려 관대하게 나눠주고 살려는 그녀야말로 진짜 미화(美花)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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