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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 사이 '제3의 길' 모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온건 진보를 표방한 이론지가 창간된다. 온건 진보 그룹에 속하는 지식인 2백여명은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당대刊)를 발간키로 하고 창간호를 다음주 중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시민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교수·변호사·시민운동가·시사평론가들로 기존의 진보·보수의 구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선을 모색하게 된다.
이들이 새로운 모색에 나선 것은 현재 시민운동이 봉착한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다. 발간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시민운동은 이제 문제를 제기하기만 해도 관심을 끌고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었던 초창기의 이득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고, 전문성의 확보와 구체적 대안의 제시, 도덕성과 일관성의 유지라는 과중한 짐을 지고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산하의 참여사회연구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지식인들이 창간 작업을 주도했지만 참여연대의 활동을 이론적으로 대변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고 오히려 시민운동을 비판하는 역할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편집인을 맡은 이병천(강원대·경제학)교수의 설명처럼 이 이론지의 목표는 "새로운 진보의 모델을 찾아 9·11테러 이후 거세게 몰아치는 보수화의 물결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기 계몽을 거부하는 보수파의 성찰'을 창간사에서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일그러진 역사를 가진 한국의 자유주의 또한 철저한 자기 계몽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기존의 진보에 대해서도 이 이론지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창간사는 "극과 극은 통한다고, 진보파의 경우도 억압자의 얼굴을 닮아 독단과 고질적 자폐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기존 진보의 명확한 차별화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차별화 노력은 우선 이론적·정책적 대안을 찾는 노력으로 표현될 것으로 보인다. 이념 그 자체를 위한 이론이 아니라 '작은 정책, 작은 권력'의 문제를 진보적으로 해석하고 이론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차별화는 '진보'의 의미를 새롭게 찾으려는 것이다.
김상봉(문예아카데미·철학)교수가 "이념적 지형을 긋기 전에 우리 담론공간에서 '진보'가 갖는 함의를 살펴보도록 하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교수는 "지금까지 좌파가 의지해 왔던 민중적 주체성은 사실상 지식인이 자신의 의식을 투사시킨 측면도 없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방치해 온 시민적 주체성을 통해 새로운 진보의 지형이나 담론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고 했다.
이 이론지에는 김상봉·이병천교수 외에도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 논객들이 여럿 참여하고 있다. 최장집(고려대·정치학)·정성배(파리사회과학대학원·정치학)·주종환(참여사회연구소이사장·경제학)교수 등 원로급을 포함해, 김균(고려대·경제학)·김호기(연세대·사회학)·박순성(동국대·북한학)·한홍구(성공회대·한국사)·조흥식(서울대·사회복지학)·조희연(성공회대·사회학)·홍성태(상지대·사회학) 교수 등 진보적 이론의 대표적 연구자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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