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바로 못간다" 대통령 양해 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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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기자단 등 180여명을 실은 대한항공 특별기 KE1001호가 쿠웨이트로 항로를 꺾은 것은 파리 샤를르 드골공항을 출발한지 한 시간이 지난 독일 프랑크푸르트 상공.서울로 가는 귀국길은 원래 러시아 남부를 횡단하는 항로였으나 이란 쪽을 향해 남쪽으로 커브를 튼 것이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이 자이툰 사단 장병 격려 방문 사실을 밝힌 것은 공항을 이륙한지 30분이 지난 8일 오전 4시35분(한국시간)께였다.“노 대통령께서 하실 말씀이 있어 기자석에 들르겠다”는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계자들의 고지가 있은 지 5분 뒤였다.노 대통령은 “이번 라오스,유럽 순방이 잘된 것 같은가요”라고 인사한 뒤 “최선을 다했고 차질은 없었던 것같다”고 했다.“생각했던 것만큼은 했다고 자평하고 싶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서울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는데…”라며 잠깐 머뭇거린 뒤 “참 여러분한테 미안한 양해의 말씀을 하나 구하고 싶다”고 했다.“뭐라고 하지…”라며 잠깐 주저하던 노 대통령은 “이 비행기가 서울로 바로 못간다”고 했다.또 “쿠웨이트에 들러서 여러분들이 좀 지체해주시고 나는 그동안에 아르빌을 다녀와야겠다”고 밝혔다.노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분에게 협력을 구해 공개하지 않고 진행한 부대 배치가 완전히 끝났다”며 “장병들이 안착했고 연말도 되고 해서 아무래도 한번 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기왕에 파병을 해서 우리 장병들이 수고하는데 그리 하는게 도움이 될 것같아 다녀오기로 했다”며 “쿠웨이트에 도착해서 우리 군용기로 갈아타고 아르빌에 새벽에 도착하면 장병들과 아침을 같이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간단하게 장병들을 격려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다시 여러분과 합류해 서울로 갈 것”이라는 얘기였다.

노 대통령은 “여러분들이 8일 도착한다고 기사를 썼을 텐데 그 오보는 국민이 다 양해하고 받아주지 않겠습니까”라고도 했다.“좀 힘들더라도 빨리 송고하고 싶으실텐데 아르빌에서 돌아올 때까지는 도와 달라”고 보안 유지를 요청했다.그간 철통 보안이 유지된 때문인 듯 기내의 외교안보 관계자들도 노 대통령의 아르빌 행 발표에 놀란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뒤이어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나서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알려드리지 못해 양해를 구한다”며 “보안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준비만 하고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권 보좌관은 “이 순간부터 기내 통화를 삼가해 달라”며 “노 대통령의 귀국이 늦어지는 것과 관련,서울의 언론사에는 대통령이 아르빌을 떠난는 시점에 청와대에서 통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윤병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정책조정실장도 세차례의 기내 마이크 방송을 통해 “이 시간부터 휴대폰과 비행기 위성 전화 사용을 금지해달라”,“위성전화는 100% 외국 정보기관에 도청되니 감청에 유의해 달라”,“7시간의 체재동안 행사 관련 내용을 전화 등을 통해 언급치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파리 출발 6시간 뒤인 8일 오전 10시 15분께 노 대통령 일행을 실은 특별기는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쿠웨이트 국제공항내 알 무바라크 미공군기지에 랜딩기어를 내렸다.공항 후미진 곳으로 이동해 세워진 특별기를 자이툰 부대에서 긴급 파견나온 장병 4명이 K-1 소총을 든 채 에워쌌다.

노 대통령은 반기문 외교장관,권 국가안보좌관,김세옥 경호실장,정우성 외교보좌관,윤병세 NSC정조실장,천호선 의전비서관,김종민 대변인,윤태영 부속실장 등과 경호ㆍ부속 요원 30여명과 함께 공항에서 C130 수송기를 갈아타고 아르빌로 향했다.그동안 무바라크 공항에서 7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대기해야 할 여타 수행원 등을 위해서는 특별기 바로 옆에 버스 한대가 세워져 이곳과 특별기를 오가며 잠깐씩 바람을 쐬는 광경도 벌어졌다.

대한항공측은 서울 직항에 준비해 두끼 분의 식사를 준비했으나 갑작스런 아르빌 행으로 성남 서울공항 도착 시간이 14시간 늦어지자 적잖이 당혹해 하기도 했다

아르빌=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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