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이는 선거법 개정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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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선거법소위가 현행 허위사실 공표죄 조항의 법정형 하한 규정을 없애기로 합의했다.
여야가 한통속이 돼 개악을 추진하는 대상은 선거법 제250조 제2항이다. 정치권은 1994년 통합선거법을 제정하면서 지역감정 선동이나 흑색·허위 선전이 선거판 혼탁의 주요 원인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엄벌 규정을 뒀다.'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의 허위사실 공표 등에 대해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못박은 것이다. 1백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당선무효가 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규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허위사실 공표죄가 인정되면 아무리 경미한 사안이라도 무조건 당선무효가 되는 만큼 여야 가릴 것 없이 부담스러워할 만하다.
소위는 법관의 재량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개정 이유를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입법 취지를 도외시한 핑계에 불과하다. '당선되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을 경우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1항과 비교하면 이는 보다 뚜렷해진다. 제정 당시 1항에도 2백만원이라는 하한선을 두었다가 이후 삭제했는데, 개정 과정을 거치면서도 2항의 하한 조항을 고수한 것은 선거판 정화를 위한 국민적 지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혁을 빙자해 이 규정을 고치려고 여야가 입을 맞추고 있다. 의원 수당 인상, 보좌관 증원 등 자기네 잇속 챙기는 데는 이력이 난 정치권인 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수많은 입법 과제는 제쳐둔 채 이런 속보이는 조치나 서둘러선 안된다. 또 2000년 총선에는 소급적용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이미 허위사실 공표죄 위반으로 여야 의원 세 명이 2심 선고까지 받은 터여서 무슨 꿍꿍이를 부릴지도 미덥지 않다.
선거법 규정이 가혹하다고 푸념할 게 아니라 법을 충실히 지키려는 자세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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