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동네축구 '짚공차기' 아세요? 지게 골대 향해 슛 골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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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6일 오후 경남 창녕군 영산면 동리마을 앞. 벼를 베낸 2백여평의 논에서 10여명이 이리저리 뛰면서 짚공을 차느라 정신이 없다. 짚신 위에 짚공을 살짝 올렸다가 허공으로 띄운 뒤 헤딩으로 멀리 보내는 등의 묘기들도 눈에 띈다. 한복 차림에 망건을 쓴 심판도 신호용 징을 들고 뛰어 다니며 신나는 표정이다.| #짚공차기란=경기장 크기는 너비 30m·길이 40m이며, 선수는 한 팀이 9명씩 모두 18명이 뛴다. 경기장은 조상들이 짚공차기를 해온 논 한 마지기를 기준으로 크기를 정했다고 한다. 골대는 너비 2m 간격으로 지게를 두 개 세워 놓으며 경기 시간은 전·후반 20분씩이다. 일반 축구경기와 다른 점은 오프사이드가 없다는 것. 짚공이 무거워 멀리 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포지션은 따로 없고 공이 가는 데로 몰려다녀 일반 경기보다 더 격렬하다.| #짚공차기 대회
요즈음 경남 창녕군에서는 이런 광경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제41회 3·1 민속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영산면에서 열리는 짚공차기 대회에 대비한 팀별 훈련 모습이다.
현재 창녕군 내 짚공차기 팀은 14개 읍·면에 17개가 조직돼 있다. 주로 조기축구회 회원들인 이들은 평소에는 축구공을, 대회가 있는 1~2월에는 짚공을 찬다. 선수들은 짚공차기 전용 짚신을 신고 한복을 입어야 한다. 대회 때는 농악대를 앞세운 풍물놀이도 빠지지 않는다.
#유래
영산면에서 짚공차기 대회가 정식으로 열린 것은 1995년부터. 영산면 재향군인회가 노인들의 고증을 받아 시범경기를 가진 것을 계기로 해마다 읍·면별 대회가 열려 올해로 여덟번째가 됐다.
대회를 주관해온 3·1 민속문화향상회 박종록(朴鍾錄·56)회장은 "특별한 놀이가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추수가 끝난 논에서 지게를 골대삼아 세워 놓고 겨우내 짚공차기를 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축구부 코치 출신인 손봉규(孫鳳圭·43)씨는 "짚공차기는 일반 축구시합보다 격렬하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에게 짚공차기를 시킨 뒤 축구시합을 벌이면 훨씬 잘한다"고 자랑했다.
전문가들은 창녕지방 짚공차기의 뿌리를 고려·조선시대 때 성행한 격구(擊毬)로 보고 있다. 격구는 말을 타고 하는 마격구(馬擊毬)와 뛰어 다니면서 하는 보격구(步擊毬)로 구분되는데 짚공차기는 보격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보격구용 공은 궁중이나 양반가에서는 동물 털로, 서민들은 짚이나 돼지·소 오줌통으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짚공차기는 지난해 세계 도자기엑스포 광주 행사장(9월 29일)과 대구 월드컵 보조경기장(11월 12일)에서 김흥국씨 등 연예인·시민들이 친선경기를 갖는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3·1민속문화향상회는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전국의 기관·단체 등에서 요청이 오면 시범경기를 보여줄 계획이다.
#짚공·짚공화
짚공은 차는 것도 쉽지 않지만 공 만들기가 더 어렵다.2대째 짚공을 만들고 있는 김만권(金萬權·67·영산면 동리)씨는 요즘 하루 종일 짚공 제작에 몰두한다. 이달 말 대회에 쓸 공만 수십 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짚공은 우선 새끼를 단단하게 꼰 뒤 날줄 12개·씨줄 20개로 엮어 지름 20㎝ 가량의 외피부터 만든다. 그런 뒤 헐렁한 새끼를 밀어 넣어 공을 완성한다. 金씨가 짚공 하나를 만드는 데 7~8시간 걸린다.
그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창녕 산골짝을 찾아다니며 짚공 원료로 사용할 볏짚을 모으는 일부터 시작한다. 콤바인 등 기계로 수확한 짚단은 길이가 짧아 사용할 수 없다. 길이가 1m쯤 돼야 하는데 이런 건 낫으로 수확하는 산골에서나 구할 수 있다.
金씨는 "단순해 보이는 짚공에도 조상의 과학정신이 깃들여 있어"라고 말한다. 짚공의 탄력이 외피용 새끼는 단단하게 꼬고 내부용 새끼는 느슨하게 꼰 데서 나왔다는 얘기다.
그는 점점 잊혀져가는 짚공 기술을 안타까워했다. "도에서 기능 보유자라도 선정해 맥이 끊기지 않도록 지원해 주면 좋을텐데…."
축구하는 데 축구화를 신 듯 짚공차기에도 전용 신발(짚신)이 있다. 짚신을 삼는 것은 김원조(金元祖·73)옹의 전문이다. 이 짚신은 발등과 앞부분이 두툼하게 만들어져 짚공을 차기에 적당한 구조로 돼 있다.
#인기
두 사람은 영산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26호)보존회 회원들이기도 하다. 해마다 줄다리기용 줄을 만들어 온 짚공예의 대가들이었다. 지금도 해마다 서울의 대학가 축제 때 줄다리기용 줄을 만드는 데 초빙돼 가고 있을 정도다.
이들이 만든 짚공과 짚신은 월드컵 조직위 홍보관·경기도 부천시청·대구 수성구청·대한축구협회 등 다섯곳에 전시돼 있다.앞으로 월드컵 개최도시 열 곳에도 전시될 예정이다.
요즘엔 월드컵 붐을 타고 짚공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3·1민속문화향상회 관계자는 "장식용으로 집안에 짚공을 놔두려는 주부들의 문의가 잇따른다"고 말했다.짚공과 짚신은 각각 3만원에 주문 생산하고 있다.
창녕=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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