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원 '先거주 토지거래'규정 폐지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정부는 상수원 주변을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하고 다양하게 규제해 수질을 보호하고 있다. 특별대책지역은 경기도의 남양주·광주·용인시와 여주군 등 7개 시·군 43개 읍·면에 걸쳐 있다.
규제를 취하는 형식은 크게 두가지다.'오염원별 입지' 규제와 '선(先)거주 조건 토지거래' 규제가 그것이다.
전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오·폐수 시설 및 축산폐수 배출 시설, 기타 골프장, 폐기물 재생 및 매립 시설, 집단묘지 등이 원칙적으로 이 지역 내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 선 거주 조건 토지거래는 이 지역에 온가족이 주민등록을 하고 함께 6개월 이상 살아야만 소규모 필지의 땅이라도 사들여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조건을 갖추더라도 건폐율·용적률 등의 제한 조건,오수배출시설·식수원 확보 등을 충족해야 한다.
미국·프랑스·독일 등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수원 취수지역을 보호한다. 상수원에서 반경 수백㎞ 이내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건축물의 입지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우리와 같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는 '일정 기간 이상 당해 지역에서 거주해야 토지를 매입할 수 있다'는 선 거주 조건 토지거래 규제가 없다.
우리 규제에는 위헌적 요소도 없지 않다.환경정책기본법 제22조 2항에는 '특별대책지역 내의 환경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역 내의 토지 이용과 시설 설치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시행령부터 고시(告示)에 이르는 과정에서 선 거주 조건 토지거래 규정이 불쑥 삽입됐다. 상위법 체계에 구체화된 규정 없이 고시의 별표로 이런 규정을 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과 재산권에 위배된다. 또 포괄 규정에 의한 지나친 규제다.
상수원의 수질은 주변의 토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누가 땅을 소유하고 이용하는지에 의해 영향받는 게 아니다. 또한 수요의 강약에 관계 없이 거주자를 기준으로 건축허가나 농지전용을 제한하는 것은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규제의 실효성도 문제다. 선 거주 조건의 규제까지 동원해 토지이용을 규제한 결과는 무엇인가. 서울 인근 수도권의 특별대책지역 내에도 마구잡이 개발이 이뤄지는 곳이 많다. 따라서 이 규제를 폐지하고, 그 대신 상수원의 수질보전을 위한 선진국형의 합목적적인 정책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오폐수 배출시설의 환경기준은 설치와 운영상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가.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시설을 얼마나 폐쇄 또는 이전시키고 있는가. 느슨하다면 더 강화해야 한다.
준(準)농림지 내에 주택을 짓고자 할 때 허용되는 필지의 규모가 너무 작아 마구잡이 개발을 조장하는지도 모른다. 과밀 이용을 규제하려면 필지 규모를 늘리고 건폐율과 용적률을 더 낮춰야 한다.
공폐율과 '셋백(Setback)' 기준도 도입해야 한다. 공폐율(工蔽率)이란 비를 흡수하지 않는 지표의 비율이다. 비가 스며들지 않는 지표는 자연환경을 결정적으로 변경시킨다. 이는 홍수량을 늘리고 한발기에 수량을 줄이며, 수질오염을 가중시킨다.
셋백이란 도로나 토지 경계에서 건축물을 일정 거리 물려서 짓게 하는 제도로 마구잡이 개발의 억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상수원의 수질보전은 매우 중요한 정책목표다. 하지만 현행 규제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합리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