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긴급 좌담 北·美 긴장 고조… 한반도 新냉전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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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이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이라크에 대한 공습 가능성까지 제기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의 잇따른 강경 발언으로 한반도는 그 긴장의 중심에 놓였다.북·미관계는 가파른 대치국면으로 치닫고, 한·미공조는 삐걱대는 조짐을 보인다.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尹德敏)교수와 통일연구원 전현준(全賢俊)선임연구위원, 연세대 이정민(李正民)교수 등 전문가 3인의 긴급좌담을 통해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배경과 우리 정부의 대응을 진단해본다.
편집자|<좌담 참석자>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이정민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 교수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尹=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마치 레이건 대통령의 발언을 연상시킨다. 레이건 대통령은 정책교서를 통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군사공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소련과의 협상을 통해 대소(對蘇)관계를 정상화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은 협상을 통해 전략핵무기 감축문제를 해결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시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세나라와의 협상을 통해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으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이를 군사력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李=부시 독트린은 미국이 불량국가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또 국내문제보다 국제문제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미국의 군사·외교정책이 획기적으로 변화하는 신호탄이다. 온건파로 지목되고 있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부시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지지하고 나선 것을 주목해야 한다.
全=부시 대통령이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이들 국가를 분류한 것은 단순한 입장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들 국가와 미국의 입장에 차이가 있다고 보는 정도였지만, 부시 행정부는 양자택일밖에 없다고 선택폭을 좁혔다.
尹=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이라크가 끝까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거부한다면 미국은 이를 구실삼아 이라크를 공격할 것이다.
全=미국은 이번 기회에 '팍스아메리카나'(미국 주도하의 세계평화)를 확실히 구축하려는 것 같다. 모든 문제를 군사력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이를 말해준다. 미국이 이들 국가에 무조건 군사력을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군사력을 통한 압박은 상당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李='악의 축'에 북한을 포함시킨 것은 부시의 편견이 작용했다기보다 부시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9·11테러 사건 이후 부시의 세계관은 명백히 드러났다. 그중 하나가 불량국가를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全=북한을 악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민주당과 공화당은 같은 입장이다. 단지 해결방식이 다를 뿐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당근을 충분히 줬는데도 북한이 변하지 않으니까 이제는 채찍을 들 때가 됐다고 부시 행정부는 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력을 사용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악의 축' 발언을 단순히 수사적 표현으로 봐서는 안된다.

尹=북한은 부시의 이번 발언 이후 초긴장 상태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의 자세를 보인다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북한은 현실 외교에 상당히 능하다. 1993년에도 위기상황이 있었지만 핵동결을 통해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 북한이 모험주의를 택할 가능성은 작다. 아쉬운 점은 이런 상황에서 남북대화가 중단되고 있다는 점이다.
全=북한은 언제나 외부의 위협이 있을 때 강하게 대응하면서 내부단속을 꾀했다.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협상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왜 우리만 때리느냐는 불만을 토로하는 것 같다. 미국과 물밑접촉을 통해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
李=사실 북한은 상당히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다. 북·미, 북·일관계를 포함해 남북관계도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원인을 제공한 쪽은 북한이다. 북한이 뭔가 태도를 취해야 할 시점이다.
尹=북·미관계는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부시 정부는 페리 프로세스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가시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대해 북한도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 할 것이다.
李=부시 행정부의 관심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통제하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는 일괄 협상도 고려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엄격한 상호주의와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全=북한으로서는 안보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재래식 무기나 핵·미사일 등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협상의 여지만 열어주면 언제나 대화에 응할 것이지만,현재는 미국이 워낙 강경하게 나와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북한이 과거와 같이 '벼랑끝 전술'로 나와서는 얻을 게 없다. 지금은 93년과 상황이 다르다.
尹=북한은 지금 아리랑 축제 등 많은 내부행사를 준비 중이다. 상당한 물자와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무턱대고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을 도와줄 나라는 남한밖에 없다. 때문에 북한이 위기국면도 타개할 겸 남북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李=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김대중 정부는 줄곧 우리의 시각으로 부시 행정부를 인식했다. 막연히 햇볕정책을 지지할 것이라는 기대감만 가졌다. 이게 가장 커다란 실수다.

全=한·미동맹은 대단히 중요하다. 김대중 정부와 부시 행정부는 큰 틀에서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세부적으로는 이견이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의견 차를 크게 문제삼지 않았으나 부시 행정부는 달랐다. 여기서 틈새가 벌어진 것이다.
尹=한·미간 공동의 목표에는 차이가 없다. 단지 우리가 햇볕정책을 추진해가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측에 협조만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의 바람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9·11테러사건 이후 미국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간파하지 못했다.
李=앞으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는 지나치게 북한 문제를 부각해서는 안된다. 또 햇볕정책을 지지해 달라고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도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全=민족이익과 동맹간의 협력체제를 다 함께 추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급적 미국과의 의견 조율을 통해 의견차를 줄여나가되 남북대화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尹=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공조가 공고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또 미국의 우려에 대해서도 충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공동 대처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또 햇볕정책도 이해시켜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리=이동현·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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