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색소폰·아카펠라 황홀한 음악의 만남 가바레크·힐리어드 앙상블 첫 내한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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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이 1979년에 선보인 앨범'마이 송'의 타이틀곡에 흐르는 색소폰 연주를 기억하는지. 얼음처럼 차가운 음색, 유장(悠長)하게 뻗어가는 긴 호흡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의 풍광을 떠올리게 하는 신비스런 선율 말이다. 노르웨이 출신 재즈 색소폰 주자 얀 가바레크(사진)의 연주엔 시공을 초월한 원초적 내면세계가 깃들어 있다.
가바레크가 영국 출신 4인조 남성 아카펠라(무반주)중창단 힐리어드 앙상블과 함께 17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한다. 프로그램은 12~16세기 프랑스·네덜란드·체코·헝가리의 종교음악 등 중세·르네상스 음악을 녹음한 CD '오피시엄'(94년)의 수록곡을 중심으로 꾸민다.
요즘 사람들이 듣기에 중세 음악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절제된 음악적 표현 속에서 오히려 숭고한 영혼의 울림을 잘 전달해준다. 여기에 비브라토의 군더더기를 말끔히 제거한 채 음악 자체에 귀기울이게 하는 가바레크의 색소폰 연주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네 명의 절제된 목소리에다 가바레크의 색소폰 연주를 곁들인'오피시엄'이 호평을 받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들의 인기는 아르보 패르트·헨릭 고레츠키 등의 '영적(的) 미니멀리즘'과 맥을 같이한다. 일상과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의 영혼을 위무하는 중세음악의 현대적 변용이랄까.
네 명의 목소리에 오버랩되는 색소폰 연주는 인간의 목소리가 빚어내는 메아리처럼 자연스럽게 들린다. 마치 다섯 명의 목소리가 만드는 화음처럼. 이쯤되면 재즈와 클래식을 넘어선 새로운 음악적 지평에 도달한다.
74년 결성된 힐리어드 앙상블의 멤버들은 카운터테너 데이비드 제임스, 테너 로저 커비 크럼·스티븐 헤럴드, 바리톤 고든 존스 등. 영국의 세밀화가이자 금속 세공사였던 니콜라스 힐리어드(1547~1619)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세밀하고 정교한 음악을 추구한다는 뜻에서다. 02-751-9606.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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