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개道에 사냥허용 '순환수렵제' 야생동물 씨말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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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충북 지역에서는 1999년 1백㏊(30여만평)당 17.4마리의 멧돼지가 서식했으나 이듬해에는 3분의1 수준인 6마리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고라니는 13.7마리에서 절반도 못되는 5.9마리로, 산토끼도 25.2마리에서 18마리로 줄었다. 99년 말부터 2000년 초까지 충북에서 순환수렵제가 실시되자 금방 야생동물의 씨가 마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 참조>

| 하지만 수렵 기간에 충남북 모두 합쳐 엽사들이 잡았다고 신고한 야생동물은 멧돼지 1백59마리, 고라니 71마리, 산토끼 75마리 등에 불과했다.
92년 이후 매년 두 개의 도(道)를 정해 수렵을 허용하는 순환수렵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밀렵을 조장하고 있다.
국립환경연구원이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시·도별 주요 야생동물 서식밀도를 보면 순환수렵을 실시한 이듬해에 야생동물 숫자가 평균 44%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겨울 순환수렵이 시행되는 경남북에서 수렵 승인을 받은 사람은 9천5백여명에 이른다.
총기 종류·기간에 따라 3만~60만원의 사용료를 내면 멧돼지·고라니·산토끼를 4개월간 총 세마리까지, 수꿩·까치·멧비둘기·청둥오리는 하루 3~5마리 정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포획 후 7일 이내 해당 읍·면에 신고해야 한다.하지만 이런 규정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밀렵감시단 대구·경북본부 권오웅(權五雄)대장은 "포획 신고를 하면 포획승인증 뒷면에 잡은 동물을 기록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한 데다 신고를 하지 않아도 과태료 30만원만 물면 되기 때문에 엽사들이 신고를 꺼린다"며 "신고량은 실제 포획된 동물 수의 10% 미만일 것"이라고 말했다.
순환수렵장 개설을 틈타 허가받지 않은 총기를 사용하는 밀렵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자정쯤 경북 영천시 고경면의 골짜기에서 불법 공기총으로 잡은 고라니 한 마리를 차에 싣고 다니던 2명이 밀렵감시단에 적발되는 등 지난 1월 한달 동안 공기총 밀렵꾼 60여명이 붙잡혔다.
환경연구원 원창만(元昌萬)박사는 "현행 제도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야생동물이 얼마나 서식하는지,얼마나 잡히는지 모른다"며 "선진국처럼 공무원 전담조직을 만들어 밀렵단속을 강화하고 얼마나 많은 야생동물이 포획되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포획량을 바탕으로 수렵을 허가해야 하지만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치단체가 순환수렵장을 개설한다는 것이다.
한편 환경부는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도별 단위가 아니라 시·군 단위로 순환수렵제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환경부 자연생태과 관계자는 "시·군이 수렵장을 개설하고 도에서 이를 감시하게 되면 밀렵이 다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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