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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 불경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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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주 뉴욕에서 개막된 세계경제포럼(WEF) 초반의 초점은 단연 일본의 경제위기였다. 포럼 참석자들은 "올해 세계경제에 최대의 리스크는 일본"이라거나 "일본이 경제력을 영원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비판적인 견해들을 쏟아놓았다.
일본경제가 어쩌다 이처럼 '동네북'이 됐을까. 다양한 원인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일본의 폭력조직인 야쿠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견해가 흥미를 끈다.
얼핏 엉뚱해보이는 야쿠자 책임론은 10년 전 일본 경시청 간부출신인 미야와키 레이스케(宮脇磊介)가 처음으로 제기했다. 미야와키는 강연과 기고를 통해 "일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가운데 절반 가량은 야쿠자 관련기업에 나갔고, 이 가운데 절반은 야쿠자 조직에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했다.3년 전 우드로 윌슨 센터 초청강연에서는 이런 대출이 1백조엔(약 1천조원)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야쿠자는 조직과 돈이 필요한 부패 정치인들과 결탁해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부실채권의 회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했다. 당시 그는 이같은 부실채권 부담이 불황을 장기화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야쿠자 리세션(경기침체)'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같은 제목을 단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EER)지 최근 기사에 따르면 일본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가 야쿠자 리세션의 출발점이었다. 달러를 잔뜩 번 기업들이 은행을 외면하는 바람에 대출해줄 곳이 줄어든 금융기관들이 야쿠자 관련기업과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야쿠자 역시 제도권에 진입할 기회였으니 당시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였다. 덕분에 전통적인 향락·건설·운송사업에서 일반 제조업·병원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불황이 덮치면서 이제 금융부실의 원흉으로 지목되기에 이른 것이다. 원리금만 떼먹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FEER지는 97년 이후 불법대출을 조사하던 공무원이나 채권회수 담당 은행간부 가운데 7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배후로 야쿠자를 지목하고 있다.
야쿠자 책임론은 아직은 이설(異說)에 가깝다. 야쿠자 관련 기업이나 대출금의 실체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위기 원인 중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조폭 영화에 관객이 몰리고, 조폭이 관련된 게이트가 나라를 뒤흔드는 우리 현실에서 '야쿠자 리세션'은 일본만의 얘기가 아닐 것이다.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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