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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클리닉 <24·끝> 지긋지긋한 시청각 공해 선거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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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6·2 지방선거 때 거리에 내걸린 현수막과 벽보, 유세 모습(왼쪽)은 시각 공해에 가깝다는 점에서 미국·유럽의 선거 홍보물(아래쪽)과 대조를 이룬다.

‘정당법’이 정당 및 후보자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광고하기 위해 현수막을 제작·홍보하는 행위를 허용하고 있고,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이 적법한 정치활동을 위해 사용되는 광고물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토록 하고 있으니 우선은 현수막 자체를 시비할 수 없다. 게다가 ‘공직선거관리규칙’이 후보자 홍보 현수막의 면적만 규제할 뿐 수량이나 게시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담고 있지 않아 각 정당과 후보자들이 이를 악용해도 따지기 어렵다. 눈에 잘 띄는 곳마다 자리 쟁탈전을 하더니 급기야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까지 유발했다. 현수막은 선거기간 동안은 시각공해, 선거가 끝나면 환경오염원이 된다. 재생 불가능한 폴리머 합성수지 재질에 페인트로 실사 출력된 현수막은 선거 후 매립되거나 소각되는데, 토양을 오염시키고 다이옥신과 같은 오염물질까지 발생시켜 환경에 미치는 해악이 심각하다.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가운데, 득표 경연은 음악에 춤까지 곁들여 쇼 비즈니스화되어 갔다. 확성기로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로고송과 지지 호소는 100데시벨(dB)을 넘었는데, 이는 열차와 항공기 소음 수준이다. ‘공직선거관리규칙’이 녹음·녹화기를 이용한 선거운동의 시간만 제한할 뿐 확성기 출력량과 소음 수준은 정한 바 없어 각 후보 진영은 마음 놓고 굉음을 낼 수 있었다. 시민은 e-메일 홍보물과 문자메시지 받고 지우기를 거듭하고, 거리에서는 선거 명함을 받고 버리기를 반복해야 한다. 유니폼을 입고 길게 도열해 구호를 외치는 운동원의 인사를 어색하게 받아야 하고, 원치 않는 악수에 응해야 한다. 집에 돌아오면 후보 선호도 조사 전화도 받아야 한다. 온 국민이 선거기간 동안 일방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들이다.

사진 ①은 스위스취리히 주의회 의원선거 포스터(2010년), ②는 미국 대통령선거 홍보스티커(2008년), ③은 프랑스 대통령선거 선거벽보(2007년), ④는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 지지 표지판(2008년).

근년에 지자체들이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을 위해 옥외광고물의 크기와 수량을 줄이고, 색채 자극도를 낮추는 한편 현수막을 비롯한 불법 유동 광고물을 근절하는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6·2 지방선거의 풍경은 그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드는 듯했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현수막 형식의 선거 홍보물은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는 후보들의 정책이 담긴 벽보를 부착할 수 있는 임시 지정게시대를 설치함으로써 홍보물의 범람을 차단한다. 미국과 영국은 미디어 중심의 선거운동이 보편화되어 있어 거리 선거운동에 의존하기보다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공약을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한다. 또 매니페스토 자료를 통해 인물이나 정당보다 정책을 놓고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우리의 경우 선거 홍보물이 전적으로 후보자에 의해 배출되지만, 그들은 지지자들에 의해 자연히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을 알리기 위해 차량에 스티커를 부착하거나, 집 앞에 작은 깃발을 걸거나 홍보물을 설치하는 등 조용한 가운데 자율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명한다.

유권자의 시청각을 그렇게 자극하고 선거판의 흥을 돋우려 춤까지 춰도 지방선거 투표율이 언제나 50%대 초·중반을 넘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행태가 후보들의 불안감의 소산일 뿐,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기존의 선거 방식은 재고돼야 한다. 시민들은 공해에, 후보자는 비용에, 환경은 오염에 시달리는 선거는 이제 끝나야 한다. 공해선거를 생태선거로, 자원을 낭비하는 물질 기반의 선거를 정보 기반의 선거로 바꿀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세계 앞에 국격의 평가를 높일 수 있도록 새로운 선거 모형이 디자인되어야 한다.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공간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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