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07> 오늘 개최 예고한 북한최고인민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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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철폐’ ‘전투 태세’ ‘완전 단절’ 최근 남북관계를 다룬 보도에서 빈번히 등장한 엄중한 표현들입니다. 천안함의 비극으로부터 촉발된 남북관계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 한반도 정국은 안갯속입니다. 그 와중에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6월 7일 개최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최고인민회의는 어떤 기관이고, 무엇을 다룰지 짚어봤습니다.

전수진 기자

정기회의 1년에 한 번 … 두 달 만에 이례적 소집

2005년 4월1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3차회의에서 대의원들이 대의원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18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3차회의를 6월 7일 평양에서 연다고 밝혔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정기회의는 좀 특별하다. 이미 올해 4월 9일에 제12기 2차회의를 개최한 지 두 달 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최고인민회의 정기회의가 두 달 만에 열린 적은 없었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통상 최고인민회의 정기회의는 1년에 한 번 열려왔다. 김일성 체제하에선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차례씩, 약 5~6개월의 간격을 두고 열렸으나 김정일 체제하에 1년에 1회 개최가 굳어졌다. 2003년에 3월과 8월 두 차례 열렸으나 회기가 달랐다. 3월엔 제10기 마지막 회의였던 6차회의가 열렸고 그해 8월에 제11기 대의원을 선출, 9월에 제11기 1차회의를 열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한 회기 내에 정기회의를 두 번 소집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라며 “다급한 사안이 생겼다는 의미”라고 설명한 바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최고인민회의 소집 이유와 안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참고로 4월 9일 열린 회의에선 예산과 헌법 일부 조항 개정 등의 문제를 다뤘다. ‘다급한 이유’들이 뭔지 살펴보기 전에 먼저 최고인민회의란 무엇인지 살펴본다.

형식적으로는 ‘국회’ … 정책 구상·결정 권한은 없어

최고인민회의는 사전적으로는 북한의 최고 주권기관이다. 한국의 국회에 해당한다. 국회에 해당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면과 화면을 통해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이 앉아 일제히 대의원증을 들어 보이며 찬성 의사를 표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반대 투표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다. 이렇듯 실질적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나 당의 결정을 추인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렇듯 최고인민회의는 북한 조선노동당의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집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구다. 정책을 구상하거나 결정할 권리도 없다. 오직 노동당의 결정을 행정적 절차에 따라 형식상 거수 가결한다. 형식상의 권력만을 행사하는 셈이다. 이는 북한의 당-국가(party-state) 체제, 즉 ‘당이 곧 국가’인 체제의 특수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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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가 대다수, 전임 정치인 아닌 ‘겸직’

거수기 역할만 한다고는 해도 아무나 만수대의사당에 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의 국회의원들에 해당하는 이들은, 한국과는 달리 전임 정치인이 아니다. 공직 혹은 별도의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다. 북한은 이들을 각계각층 군중의 대표라고 부른다. 이런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 대의원 구성은 여러 지역과 분야의 공직자들을 기본으로 하고 소수의 노동자·농민·군인들을 포함시켰다. 고위층들이 대거 포함돼 있으나 대다수가 출생지역이나 개인적 연고지에서 선출되도록 해 구색을 맞췄다. 총 대의원 수는 현재 687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 약 3만5000명당 1명이 선출되는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현직 대의원이다. 대의원 명단엔 ‘제333호 선거구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명시돼 있다.

대의원의 임기는 5년으로, 후보자들은 당의 추천과 심의에 의해 결정된다. 이 후보자들을 놓고 선거를 치르기는 하지만, 이 또한 당의 후보자들을 추인하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현재 제12기 대의원 선거는 지난해 3월 8일 열렸다.

대의원들은 실질적 역할이 거의 없지만 외형상 위상은 높다. 일례로 대의원증을 소지한 사람들은 북한 국내에서 모든 교통수단을 무료로, 그것도 최우선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또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승인 없이는 사법·검찰 기관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천안함 사건 후속 조치
김정일 방중 결과 등 다룰 듯

지난해 4월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제12기 1차회의에서 김정일이 대의원증을들어 회의 안건에 찬성 표시를 하고 있다

최고인민회의의 헌법상 역할은 ▶헌법의 수정 보충 ▶부문 법의 제정·공포 ▶대내외 정책의 기본원칙 수립 ▶국가주석·국방위원장 및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 중앙재판소 소장, 중앙검찰소 소장 등의 선출·소환 ▶중요 부문 법 승인 국가 예산에 대한 보고·심의·승인이다. 부문별 위원회에는 법제위원회·예산위원회가 있다.

올해 4월 9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2009년 예산집행 결산과 2010년도 예산 등 4개의 안건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할 것인지 여부도 그의 방중 시점과 맞물려 관심을 모았는데, 이번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2003년부터 격년으로 참석해왔고, 지난해 회의에 참석을 했다. 통일부는 이번 회의가 권력구조나 정책방향에서 큰 변화 없이, 통상적 수준에서 기존에 제시된 과업달성 강조에 중점을 뒀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7일로 예고된 회의에서 어떤 안건이 다뤄질지다. 이례적으로 회의를 소집할 만큼 ‘다급한 사안’이 무엇인지 주목된다.

관심사는 크게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치 ▶후계자 김정은의 등장에 필요한 제도적 보완장치 마련 여부 ▶김정일 위원장 방중 결과 언급의 세 가지다.

먼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움직임을 보일 거라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번 7일 회의가 예고된 시점인 5월 18일에 주목한다.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의 결과가 발표된 20일을 앞두고 회의를 예고했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대응 차원이라고 풀이하는 것이다. 통일부는 최근 발간한 ‘주간 북한 동향’을 통해 "천안함 사태 조사결과 발표 등 최근 북한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입장 및 원칙 표명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고인민회의는 형식적이긴 하지만 북한 인민을 대표하는 기구”라고 지적하면서 “북한 인민 전체의 차원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응한다는 의미로 선언이나 성명을 발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방위원회·군부 차원의 대응에서 외연을 넓힌 대응을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둘째로는 김정일 위원장의 최근 방중 결과를 다룰 것이라는 예상이다.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의 김영수 교수는 “4월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결과를 추인하고,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한 법 조항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최고인민회의는 대내적인 이유로 모이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경제난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방중 성과를 실제보다 부풀려 인민에게 선전하는 자리로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2012년 강성대국’을 만드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또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선 구체적 수치를 제시해 비전과 목표를 인민에게 선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즉 방중 후 김정일 체제의 통치 강조점을 새로 제시하고, 그를 추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셋째, 후계자로 지목됐다고 알려진 3남 김정은의 후계구도에 관련된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고인민회의의 두 가지 큰 줄기는 예산과 인사인데, 이번엔 인사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세대교체를 통해 원로들을 물러나게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후계구도에 필요한 초석을 쌓는 조치가 있지 않을까 한다”고 전망했다. 최근 김일철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이 고령을 이유로 국방위원회에서 해임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김정은을 후계자로 천명한다든지 하는 깜짝쇼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러운 시각도 더했다.

이런 여러 예상과 분석에 반해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예상보다 그다지 많은 의미를 실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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