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놀란 쫄깃쫄깃 면발, 비결은 햇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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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대형마트 식품매장은 CJ·롯데 같은 대기업들의 전쟁터가 됐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영토 침범’은 예사다. 면(麵)이나 국수 시장에 농심·오뚜기·풀무원 등이 진출하면서 이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온 중소 전문업체들의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꿋꿋이 인기제품을 내놓는 회사가 칠갑농산이다. 1981년 창업 후 쌀가공 식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해 연 400억원대 매출을 올린다. 이 회사의 ‘얼음찬 냉면’은 매달 3만~4만 상자(10개들이)가 팔린다. 여름철 성수기엔 하루에 2000상자가 나가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선보인 ‘얼큰한 쌀국수’ ‘구수하고 담백한 쌀짜장’ 같은 1인분 제품의 반응도 좋다. 이능구(67) 대표이사 회장은 “처음엔 호기심에 한두 개 샀다가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면발에 끌려 계속 구매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맛의 비결이 뭘까. 첫째 비밀은 태양열 건조방식이란다.

햇볕 건조 공법=이 회사 공장은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자락에 있다. 1970년대 후반 8000원을 들고 상경했던 이 회장은 식품사업에 성공하자 93년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공장을 지었다. ‘칠갑’이라는 회사명도 칠갑산에서 따왔다.

“여기는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곳이 아닌데….”

충남 청양의 칠갑농산 공장에서 한 직원이 1인분씩 포장된 냉면 제품을 태양열로 건조하고 있다. 이능구 회장은 “햇볕에 면을 말려 더욱 쫄깃하고 부드러운 맛을 낸다. 태양열로 면을 건조하는 시설은 국내 유일하다”고 소개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26일 생산라인을 기자에게 안내하던 이 회장은 공장 한쪽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머뭇거리며 출입문을 열었다. 외부 사람을 들이지 않는 건 물론이고 180여 명의 직원 가운데서도 이곳을 드나들 수 있는 이는 대여섯 명밖에 안 된다. ‘기밀 시설’인 셈이다.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갔는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것은 1300여㎡(약 400평) 면적의 평범한 건조장이었다. 겉보기엔 지붕을 반투명 처리해 놓은 것 정도가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1인분 용기에 담긴 생칼국수·냉면이 천장에서 투과된 햇볕을 듬뿍 받고 있었다. 가을볕에 고추 말리듯 갓 뽑아낸 면을 햇볕에 말리는 중이었다. 이를 위해 지붕을 반투명 렉산 소재로 시공했고 천장엔 일조량 조절 장치를 설치했다. 겨울철이나 비·구름이 있는 날엔 자동으로 열풍을 쪼여준다. 이 회사의 1인분 면류 제품은 여기서 5시간가량(냉면은 2시간) 건조하고 난 다음 개별 포장된다.

그는 “보통 사람 눈엔 별것 아니게 보이겠지만 곳곳에 온도·습도 조절장치가 돼 있다. 태양열로 면을 건조하는 시설은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소개했다. 말을 듣고 보니 건조장 곳곳에 회전팬과 공기배출구가 설치돼 있었다.

“면류 제품은 어떻게 말리느냐에 따라 면발의 쫄깃함, 부드러움이 달라져요. 건조가 잘못되면 면이 쉽게 부서지기도 하죠. 대량 생산을 하는 대기업에서는 열풍과 냉풍을 번갈아 쪼여주는 속성 공정을 씁니다. 하지만 자연 건조를 하면 시간이 더 걸리는 대신에 탱탱하고 촉감이 부드러운 면을 얻을 수 있지요.”

이 회장이 5억원을 투자해 태양열 건조장을 만든 건 2006년 여름이다. 대기업들이 쌀국수·냉면 시장에 본격 진출하던 시기였다. 이 회장은 “차별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겠구나 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연구를 거듭하다가 예부터 전래돼 온 국수 건조방식을 현대화해 보자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고 했다.

물론 시행착오가 많았다. 겉과 속이 골고루 건조돼야 하는데, 겉은 잘 마른 대신 속은 축축하기 일쑤였다. 어떨 땐 건조 과정에서 곰팡이가 생겼다. 건조시간을 단축하려고 실내온도를 높였다가 면발이 푸석푸석해지기도 했다. 그는 “이제 최적의 온도·습도·통풍 조절 방식을 터득했다. 더 이상 자세한 얘기는 영업비밀이라 해줄 수 없다”며 웃었다.

우리쌀 사랑=이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쌀국수 명인’으로 우리쌀 사랑이 유별나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메밀국수 1위 ‘칠갑메밀국수’에도 생쌀가루 30%가 들어간다. 역시 메밀이 주원료인 ‘얼음찬 냉면’에도 생쌀가루 20%를 섞는다.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면발을 만드는 또 다른 비결은 바로 이 생쌀가루인 것이다. ‘얼큰한 칼국수’ 같은 면류는 밀가루(60%)와 전분(10%)·생쌀가루 30%를 섞어서 만든다. 생쌀가루로 국수 만드는 기술 역시 칠갑농산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갖고 있다고 한다. 생쌀가루와 밀가루는 각각 따로 노는 속성이 있어 잘 섞이지 않지만 배합·숙성 기술을 개발해 문제를 해결했다.

“시중에 나온 쌀국수류는 대개 찐 쌀로 만들어 떡국을 씹는 느낌이 납니다. 생쌀가루로 만들어야 씹는 감촉이 좋고 맛도 더 쫄깃해요. 또 조리법도 라면같이 간단하지요.”

요즘 청양공장에서 생산되는 쌀국수·냉면 개별포장 제품은 하루 2000상자에 이른다. 그는 “토종 쌀이 남아돈다고 하는데 연간 3000~5000가마(80㎏ 기준) 정도의 토종 쌀을 원재료로 쓰게 돼 흐뭇하다”고 말했다.

청양=이상재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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