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對北정책 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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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부가 잇따라 대북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미·북 관계가 난기류에 빠져든 가운데 대북정책 기조를 둘러싼 한·미간 공조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정부는 미국과의 접촉에서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으며,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했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포용정책의 효용성에 회의를 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워싱턴 포스트는 3일자 사설에서 "한반도의 경우 북한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미군의 주둔이 필요한데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북한과의 외교를 시도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대북정책을 재조정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의 외교적 공세 속에 낙관적 전망만 내놓고 있는 정부는 오는 19일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미국측을 설득할 마땅한 수단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봐주기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한·미 양국은 햇볕정책의 평가에서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일 한·미 외무장관 회담이 끝난 뒤 이 자리에 배석했던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었으나 그동안 북한으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반응을 얻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햇볕정책에 회의를 표시했다.
한승수(韓昇洙)전 외교통상부 장관도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해 말한 내용이 국내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며 양국 시각에 차이가 있음을 시사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3일 폭스TV와의 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들 국가('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이라크·이란)는 미국과 미국의 국익, 미국의 동맹들에게 분명하고 현존하는 위협"이라면서 "이라크나 북한 같은 정권에 대해 사정을 봐주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교전문가들은 이처럼 잇따라 미국 고위 당국자들이 대북 강경발언을 하는 것은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수정 요구라고 해석하고 있다.
◇정부의 고민과 대응책=정부는 북·미간 대화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양측이 가파르게 대치하면서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햇볕정책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오는 20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화를 통한 북한 문제 해결과 부시 대통령의 발언 수위 조절을 요청할 방침이어서 한·미간 시각차가 갈등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金대통령은 4일 최성홍(崔成泓) 외교통상부 장관과 임성준(任晟準)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남북관계에 노력을 기울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미관계도 개선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나가야 한다"면서 "지난해 남북관계는 거의 정체상태에 있었으나 올해에는 진전이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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