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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서 바닥서 가구서 나오는 유해물질 2백여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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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시크 하우스(Sick House)'.
집안의 건축자재나 가구, 생활용품에서 나오는 유해 화학물질 농도가 건강을 해칠 정도로 높은 집을 말한다. 이른바 병을 만드는 집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집안에서 보내는 주부와 아이들에게 이런 집은 만성질환을 만드는 환경오염 지대일 수 있다. 겨울철 실내 공기를 위협하는 오염 발생원과 쾌적한 주거공간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소개한다.
편집자|실내 환경 이렇게 개선하자
▶벽지·바닥재 등은 천연소재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벽지나 바닥재는 환기가 잘되는 여름에 교체한다
▶새 집·새 가구를 들여놓으면 자주 환기한다
▶집안에 냄새가 나면 방향제 대신 숯을 놓아둔다
▶벤저민·고무나무 등 유해물질 흡착효과가 있는 식물을 키운다
▶커튼이나 카펫의 곰팡이·음식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세탁한다
▶살충제보다는 은행잎이나 박하를 이용해 바퀴 벌레·개미를 퇴치한다
▶모과·솔가지·허브식물 등으로 자연향기를 연출한다| ◇늘어나는 화학물질 과민증 환자=지난해 11월 새 아파트에 입주한 최모(31·여·서울 홍제동)씨. 이사 2주 후 8개월 된 딸의 피부에 좁쌀같은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채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녔지만 치료 효과는 그때뿐.
다행스럽게도 두달여 지속되던 아이의 피부병은 최씨의 직장 복귀로 해결됐다. 아이를 구옥(舊屋)에 사는 친정 부모에게 맡긴 지 얼마되지 않아 발진이 사라진 것.
겨울이 되면 이유없이 여러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들 상당수의 공통점은 신축 주택에 입주했거나 새 가구를 들여놓았거나 벽지·장판을 새로 바꾸었다는 점. 일컬어 '시크 하우스 증후군', 또는 '화학물질 과민증'환자들이다.
최근 녹색서울시민위원회가 주택 10곳과 사무실 4곳의 실내 오염을 측정한 결과 톨루엔·에틸렌 등 화학물질 농도가 실외보다 최고 네배 높게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계절별로는 겨울이 여름의 1.9배에서 25배를 기록했다.
서울대병원 알레르기 내과 김유영 교수는 "한겨울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화학물질이나 미세 입자에 노출될 경우 만성 피부질환자 및 폐질환자나 노약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어떤 물질이 있나=실내 환경을 오염시키는 유해물질은 줄잡아 2백여종. 건축 마감재나 가구 접착제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를 비롯해 원목·가죽쇼파에 사용되는 방부제 붕산염, 색을 내는 염화메틸렌 등 다양하다.
특히 집 내부를 덮는 벽지도 문제의 소지가 많다. 톨루엔·벤젠으로 인쇄하는 새 종이 벽지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고, 실크 벽지는 종이 위에 염화폴리비닐을 입힌 뒤 인쇄하기 때문에 화학물질에다 환경호르몬까지 방출할 수 있다는 것.
이밖에도 주방의 프로판가스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이산화황, 흡연과 방향제·살충제 사용에 의한 유기물질이 집안 공기 중에 비산(飛散)한다.

<그림 참조>
이들 물질은 강한 마취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중추신경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 눈과 호흡기를 자극하고, 알레르기를 유발시킨다. 벤젠과 같은 일부 화학물질은 간에 대한 독성과 발암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경원대 건축설비학과 윤동원 교수는 "서구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실내 환경을 중시한 '건강 주택'개념을 도입해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며 "우리도 정부나 주택 시공업자는 물론 일반인들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96년 건설성과 후생성 중심으로 건강주택연구회가 조직됐고, 주택 실내 화학물질 오염에 관한 지침을 제정, 벽지·합판류의 등급제를 시행하고 화학물질 방출량을 규제하고 있다.
◇가정에선 이렇게=건강 주택에 관한 정책이 없는 우리나라에선 우선 소비자가 직접 나서는 길밖에 없다. 주택시공자에게 건강 위해성이 낮은 건축 원자재를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요즘은 천연물질을 사용한 벽지나 공해를 크게 줄인 페인트 등 환경 친화적인 자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흡연이나 방향제·살충제 사용을 자제하고,플라스틱 제품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살충제 등을 일시적으로 사용해도 밀폐된 공간에서 장기간 흡입함으로써 체내에 축적될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기. 겨울이라도 하루 한두 차례는 현관문까지 열어놓는 강제 환기가 필요하다.

<표 참조>
이밖에도 '다음을 지키는 엄마 모임'김소연 부장은 '재활용하는 삶'을 제시했다. "공장에서 갓나온 새 것에서는 반드시 유해물질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중고용품을 재활용하는 게 가족들의 건강에는 최선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이 정부를 상대로 관련 정책 도입을 촉구할 필요도 크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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