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동포에게 따뜻한 사랑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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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려인들은 가난한 데다 이방인의 서러움까지 겪고 있기 때문에 북한 동포보다 더 딱하지요. 더 많은 온정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러시아 연해주에 가 동포들을 돕다 일시 귀국한 김재영(金在永·31·(左))·박정인(朴貞仁·29·(右))씨 부부.
전남 장흥 출신인 金씨와 광주 태생의 朴씨는 3년 전 결혼했고, 경남 산청군 '마근담 농업학교'에서 교사로 함께 일했다.
"연해주를 다녀온 사람에게서 고려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자원봉사를 결심했습니다. 지난해 4월 강원도 속초항에서 배를 타고 열여덟 시간 만에 연해주에 도착했지요."
연해주는 구한말과 일제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가 정착했던 곳. 이들은 스탈린 치하에서 6천여㎞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가 1991년 소련이 붕괴한 뒤 다시 연해주로 이주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의 자국민 우월정책으로 애써 가꾼 땅 등을 헐값에 판 뒤, 열차를 1주일씩 타고 부모·조부모들이 처음 발붙였던 땅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金씨 부부는 형편이 특히 어려워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의 임시 정착촌 네 곳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金씨는 "막상 현지에 가 보니 상황이 훨씬 심각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세 시간 달려야 하는 크레모보 정착촌에서 살고 있다.
주민은 40가구 1백명. 金씨네 숙소는 소련 공군이 철수한 뒤 수년간 버려졌던 건물의 4층이다. 이들은 영하 40도 이하의 혹한 속에서 소형 전기난로 하나를 켜고 추위를 이겨야 한다.
金씨는 중고 자동차를 두세 시간씩 몰고 고려인 정착촌을 돌며 한국에서 배워 간 수지침·지압술 등으로 아픈 이들을 치료해 준다. 또 매주 서너 차례씩 자기 집 등에서 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부인은 방 하나를 이·미용실로 꾸며 머리를 공짜로 깎아 준다.
생활비는 고려인 돕기 운동회 호남본부에서 월 3백달러(약 40만원)씩 주는 보조금으로 해결한다.
부인 朴씨는 "당초 1년 계획으로 갔으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동포들을 놔두고 나올 수 없어 계속 봉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 아이를 갖지 않고 있다.
金씨는 "고려인은 같은 민족이며,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독립투사의 후예들"이라며 "우리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오는 7일 오후 6시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고려인 돕기 후원의 밤 행사와 '돌나라 한농 예술단'공연을 보고 다시 연해주로 간다. 062-225-6419.
광주=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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