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징후 없었나 있었나 <이기호 前수석 해명> <국정원 보고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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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형택씨 구속에 이어 특검팀이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다음주 초에 소환키로 해 사건이 또다른 국면을 맞게 될 조짐이다.
李전수석에 대한 조사는 국가정보원이 1999년 12월 이형택씨의 요청으로 보물 발굴 현장 탐사를 벌인 뒤 보물 매장 가능성을 높게 판단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음이 밝혀진 데 따른 것이다.
당시 보고서는 국정원 목포출장소측이 작성, 경제1과장 金모씨를 거쳐 엄익준 당시 2차장(작고)에게 제출됐음이 특검팀에 의해 확인됐다.
특검팀 조사 결과 해경측은 당시 국정원 목포출장소의 의뢰를 받아 해상구조대원 5명과 고무보트 1정, 구조장비 등을 동원해 수중 탐사작업을 벌였다."해저동굴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돼 현지 발굴업자들의 주장이 상당부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작업팀의 결론이었고, 이 내용이 국정원 보고서에 담긴 것이다.
李전수석은 그러나 자신이 연루된 사실이 지난달 26일 밝혀지자 "嚴전차장이 '그동안 조사해봤는데 뭔가 찾기가 어렵다. 신빙성이 떨어져 (보물이 매장돼 있다는 주장이)사실이 아닌 것 같아 이형택씨에게 연락을 해줬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정말 보물이라도 발견되면 수조원의 국익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사사로운 내용이어서 대통령께는 보고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했다. 당시 국정원 보고서와는 거리가 있는 해명이었다.
한편 탐사작업을 벌였던 해경측도 지난달 작업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개흙이 깊고 시계(視界)가 흐려 보물 매장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당시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이런 점들 때문에 특검팀은 일단 李전수석이나 해경측이 국가기관의 개입범위 등을 축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황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보고 있다.
또 보고서 내용으로 미뤄 당시 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1999년 12월 24일까지 재임)과 그 후임인 임동원(林東源)씨 또는 청와대 등의 다른 고위인사에게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검팀은 당시 보고서 작성 및 보고라인에 있던 국정원 관계자들도 불러 이같은 의문점들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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