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일본 새 총리, 내각·당직서 ‘상왕’ 배제 선언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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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일본의 집권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일본의 94대 총리가 된 간 나오토 총리가 손을 들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사진) 간사장은 국민의 불신을 받는 만큼 당분간 조용히 지내는 게 본인과 민주당, 그리고 일본의 정치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간 나오토(菅直人·63) 총리가 2일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당초 원고에 없던 표현이었다. 그의 발언은 오자와를 추종하는 세력은 물론 반대하는 세력도 놀라게 했다.

◆오자와와 ‘위험한 동거’=간 총리는 지금까지 오자와와 협력적인 관계였다. 민주당 대표였던 2003년에는 자유당을 이끌던 오자와와 의기투합해 합당을 끌어냈다. 오자와가 당 대표였을 때는 대표대행으로 보좌하기도 했다. 올 새해엔 오자와 자택에서 친(親) 오자와파들이 모이는 신년하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 간이 이번엔 반(反)오자와를 표명한 것이다. 오자와의 사임을 원하는 여론을 십분 반영한 것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이 실시한 긴급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자와의 퇴진은 잘된 일”이라고 답한 사람이 85%에 달했다. 간 총리의 이 한마디는 민주당의 상왕인 오자와의 서슬에 눌려 있던 인사들을 일으켜세웠다. 반 오자와 그룹의 선봉인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국가전략상,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성 부대신 등이 즉각 간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간에게 “이중권력,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이에 반발한 오자와 그룹 의원들은 경선에서 대항마로 나온 다루도코 신지(樽床伸二) 의원에게 표를 몰아주려는 움직임을 보여 한때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오자와는 의원 개개인에 판단을 맡기는 ‘자율 투표’를 선택함으로써 극한 대립을 막았다.

간 총리는 일단 오자와를 당료나 각료에 임명하지 않을 방침이다. 친오자와 인사들도 요직을 차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오자와를 완전히 내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거의 귀재인 오자와의 도움 없이 참의원 선거의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150명에 달하는 당내 최대 그룹인 오자와그룹을 완전 배제할 경우 당 분열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간 총리는 4일 “지금은 분열을 초래할 때가 아니다. 어느 쪽도 아닌 ‘노 사이드(No Side) 선언’을 하겠다”며 당내 결속을 촉구했다. 오자와도 일단 사안별로 간 총리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대표로서 간 총리의 잔여 임기는 9월에 끝난다. 그의 정치적 운명은 7월 참의원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 간 총리와 오자와가 시작하는 ‘위험한 동거’에 일본 열도가 주목하고 있다.

◆유연한 사고와 직설적 성격=올 초 일본 재무성 직원들은 간 부총리 겸 재무상에게서 생뚱맞은 지시를 받았다. 일찍 퇴근해 데이트를 즐기라는 공식 업무연락이었다. 이는 말이 데이트지 남녀 간의 육체 관계를 의미한다고 일 언론은 보도했다.

일본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꼽히는 재무성 관료들은 밤에도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간의 생각은 달랐다. 밤늦게까지 일해봐야 능률은 오르지 않고 전기세와 인건비만 축낼 뿐 별 실익이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따라서 아예 일찍 퇴근해 부인과 잠자리를 한번이라도 더 가짐으로써 저출산 문제를 푸는 편이 낫다는 논리였다.

이처럼 유연한 사고는 그의 지난했던 인생 경험에서 나오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첫 총리인 그는 80년 삼수끝에 중의원에 첫 당선됐다. 지금은 10선이다. 풍부한 아이디어와 실천력으로 96년 자민당·사회당·신당사키가케 연립정권의 후생노동상으로 발탁됐다. 도쿄공업대 응용물리학과 출신으로 변리사 자격을 갖춘 그는 후생노동상으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특히 혈액제제로 인한 에이즈 감염 피해가 행정부실에 따른 사고였다는 점을 밝혀내 그의 이름을 국민에게 깊게 각인시켰다.

관료주의의 폐해를 직접 체험한 그는 “적극적인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며 96년 9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와 함께 민주당을 창당해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들은 이후 오자와 이치로와 함께 ‘민주당의 트로이카’로 불리며 새 정치를 준비해오다 지난해 창당 13년 만에 정권 교체의 꿈을 이뤄냈다.

한편 2004년 6월 당시 여당이던 자민당의 각료들이 국민연금을 미납한 게 드러나자 간은 돈을 안 낸 각료 3명을 ‘미납 3형제’라고 부르며 공격했다. 그러나 나중에 행정절차상 착오이긴 했지만 간 자신도 국민연금을 미납했던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머리를 삭발하고 괴나리봇짐을 진 스님 복장으로 시골 방랑에 나서 일본 국민을 놀라게 했다.

그는 평소 유연하지만 책상을 쳐가며 상대방을 설득하는 직설적인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그는 평소 지론인 소비세 인상 등 각종 난제들을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도쿄= 박소영·김동호 특파원


간 나오토가 걸어온 길

연령 63세

출신지 야마구치(山口)현

출신대 도쿄공업대 응용물리학과

지역구 중의원 도쿄 18구

당선횟수 1980년 이래 10선

좌우명 ‘인생은 단 한 번뿐’

취미 바둑

저서 『대신(大臣)』『개혁정책준비완료』

가족 부인과 2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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