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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역발상 책 세 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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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뇌과학으로 푼 창조적 파괴의 비밀

상식파괴자
그레고리 번스 지음
김정미 옮김
비즈니스맵, 376쪽, 1만5000원

#1 데일 치후리란 세계적 유리공예가가 있다. 수수한 사발 하나가 몇 천 달러에 이르고 1986년엔 미국인 예술가 중 드물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단독 쇼를 선보이기도 한 거장이다. 그의 작품은 비대칭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데 치후리는 76년 영국 여행 중 교통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한 뒤 새로운 작품세계를 열었다.

#2 1854년 크림 전쟁에 파견된 ‘간호학의 대모’ 나이팅게일은 병사들이 부상 합병증이나 영양실조 때문이 아니라 전염병 때문에 더 많은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원 도표 등 새로운 시각적 구성과 배열로 정리한 개혁안을 당시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내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구한 개선을 이뤄냈다.

#3 중국 출신의 찰스 왕이 세운 컴퓨터 어소시에이츠는 설립 10여 년만인 89년엔 연 매출 10억 달러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직원들을 정기적으로 해고하는 등 ‘공포문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결국은 회계부정이 드러나 왕은 2002년 이사회에서 사임해야 했다.

미국의 저명한 뇌과학자이자 신경경제학자인 이 책의 지은이는 이 같은 사례들을 바탕으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자신과 세상을 바꾼 ‘창조적 파괴’의 비결을 제시했다. 바로 ‘다르게 보라’ ‘틀에서 벗어나라’ ‘두려움을 버리고 남들의 시선을 무시하라’이다.

치후리의 경우 ‘상식파괴자’의 첫 번째 교훈을 그대로 보여준다. 꼭 극적인 수단에 의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육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사물과 상황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나이팅게일은 틀에서 벗어난 사고방식의 실례이다. 그는 군 지휘관들과 다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하고, 시각적인 방법으로 이를 표현함으로써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찰스 왕의 사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조직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 경우다.

지은이는 창조적 사고를 가로막는 것은 우리 뇌가 효율성의 원리에 따라 진화되었기 때문이란 의외의 주장을 편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정보로 현재 상황을 예측하는 ‘예측부호화(predictive coding) 기술’이나 정보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한 ‘범주화 기술’ 등이 작용해 우리가 기존의 생각,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책은 창의적 사고를 키워준다는, 그렇고 그런 여느 자기계발서와 다르다. 뇌과학이 바탕이 되어 꽤나 설득력이 있고 흥미로운 사례도 여럿 나와 한마디로 ‘강추’다. 누구나 상식파괴자가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현실을 안다는 것 자체가 ‘새 출발’을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으니까.

김성희 기자



안전한 길 대신 가고싶은 길을 가라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티나 실리그 지음, 이수경 옮김
엘도라도, 256쪽, 1만2000원

미국 스탠퍼드대의 티나 실리그 교수는 종종 학생들에게 자신이나 주변 사람의 기대를 과감히 뿌리쳤던 경험을 들려달라고 말한단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의문을 품을 때 뛰어난 성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모라면 ‘안전하게 정해진 길’을 가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게 보통이지만, 실리그 교수가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 중 하나가 ‘과감히 규칙을 깨라’는 것이다. 역시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가르치는 교수다운 발상이다. 그의 표현으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정반대”의 내용이란다.

그는 “규칙이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전한 범위에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안전지대에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연한 다음 단계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해 ‘인데버(Endeaver)’라는 독특한 단체를 만든 린다 로덴버그는 예일대 로스쿨을 나왔지만, 주변의 기대와 통념을 뿌리치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택해 성공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자신의 능력에 고정된 사고방식을 갖는 것을 경계하라고도 조언한다.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면 그와 배치되는 행동을 좀처럼 하지 않으니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게 된다는 설명이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우선 복권을 사라’고도 조언한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기회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실패와 포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꾸라고 한 대목도 흥미롭다. “포기는 우리에게 상당한 파워를 부여하고 상황을 주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정해진 선 바깥에 있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기회라도 그것을 붙잡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그 자신도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원을 휴학한 채 한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계획도, 목표도 없이 보냈던 시간이 결국 자신의 길을 찾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일률적인 잣대로 만들어진 ‘엄친아’ ‘엄친딸’, 그리고 ‘스펙’이라는 유행어는 혹시 스무 살의 청춘들을 더 소심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감옥’은 아니었을까. 강의록이면서도 개인적인 에세이 형식이 곁들여진 책엔 열정적이면서도 섬세한 저자의 품성이 비춰진다. 스무 살이 읽었으면 좋았겠지만, 30~50대에 알아도 좋은 것들이 많다.

이은주 기자



엉뚱 발랄한 발명 아이디어 100개

발명마니아
요네하라 마리
글·그림
심정명 옮김
마음산책, 511쪽, 1만5000원

주의 사항부터 일러둔다. 가급적 혼자만의 공간에서 이 책을 탐독할 것. 사람 많은 곳에선 절로 터져나오는 웃음 소리 때문에 민망해질 수도 있다. 둘째, 책에 적힌 온갖 발명을 과학적으로 따지려 들지 말 것. 실현 가능성보다 엉뚱한 발상 자체에 힘이 실린 책이다.

지은이 요네하라 마리(1950~2006)는 해학적인 글로 유명한 일본 작가다. 이 책에선 그의 유머가 어떤 정점을 찍은 듯 강도가 더 세졌다. ‘선데이 마이니치’ 신문에 연재한 ‘발명마니아’란 칼럼을 묶었다. “좀스러운 발명으로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지은이의 말마따나 온갖 잡다한 발명 아이디어 100개가 담겼다. 발명의 범주는 일상에서부터 국제 문제에 이르기까지 넓게 걸쳐 있다. 엉뚱한 발명으로 세상사를 해결하려는 속셈인데, 그 실현 가능성을 떠나 묘한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이를테면 지은이가 제안하는 교통 체증 탈출법. 탈부착식 사이렌과 ‘POLICE’ 등이 적힌 테이프로 경찰차나 구급차로 둔갑하면 된다고 말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지은이가 덧붙이는 말. “관존민비 (官尊民卑)의식이 강한 일본인이 이런 만용을 발휘할 일은 없을 거다.”그러니까 방점은 가짜 경찰차가 아니라 ‘관존민비’에 있었다. 관료를 지나치게 높이고 스스로를 낮추려는 일본인들을 꼬집고 싶었던 게다.

이런 아이디어도 있다. 흔히들 자전거 출퇴근이라고 하면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을 밟는 일만 떠올린다. 한데, 생각을 비틀어 보자. 버스나 택시는 자전거로 둔갑시킬 수 없을까. “버스나 택시 안을 피트니스 센터로 만들자”는 게 지은이의 발상이다. 운전 기사가 핸들을 잡고 수십명의 승객이 페달을 밟는 풍경. 에너지 절약에다 운동까지 겸할 수 있는 통쾌한 발명 아닌가.

눈을 세계로 돌리면 날카로운 발명이 쏟아진다. 발명품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꼬집는 방식은 사뭇 문학적이기까지 하다.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September 12’란 게임이다. 미사일로 테러리스트를 공격하면 곁에 있던 민간인들이 다시 테러리스트가 되는 게임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이 게임엔 끝이 없다. 오히려 공격하지 않으면 테러리스트가 없어진다.”

난소암으로 고생하던 지은이는 2006년 5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 세상에서 그는 자신의 발명품 하나를 실현에 옮겼을지 모른다. 이생의 사람들과 죽은 부모를 연결해주는 사업 아이템 말이다. 복잡한 세상사, 엉뚱한 발상에 오히려 해답의 단초가 있다는 지혜를 일러준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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