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이야기를 뒤집어 보는 전복(顚覆)의 재미는 유래가 깊다. 엄밀히 말하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기생의 딸인 춘향이 장원급제한 어사의 정실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전복적인 내용이지만, 남원 지방에 내려오는 ‘박석고개 전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몽룡을 짝사랑한 춘향은 본래 미녀가 아닌 끔찍한 추녀였고, 월매의 간계에 넘어가 춘향과 하룻밤을 같이한 이몽룡은 본얼굴을 보자마자 서울로 야반도주한다. 굴욕을 참지 못한 춘향이 자결하고, 그 원혼 탓에 남원 땅에 부임하는 신관 사또마다 죽음을 당하자 나라에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낙방거사 이몽룡에게 남원 현령을 제수한다.
이때 몽룡이 진혼을 위해 윤색된 ‘열녀춘향수절가’를 만들어 널리 유포시킨 게 오늘날 전해지는 춘향전의 유래라는 것이다. 판소리 춘향가에도 나오는 박석티가 본래 박색치(薄色峙)였다는 게 이 전설의 핵심이다.
전복의 미학은 최근 대중문화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방자전’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3일 종영한 KBS-2TV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는 원작에서 주인공 신데렐라를 학대하던 조연인 ‘계모가 밖에서 데려온 딸’을 주인공으로 바꿔 놓아 큰 성공을 거뒀다. 올 칸 영화제 개막작이던 영화 ‘로빈 후드’는 영국의 한 변두리 셔우드 숲을 누비던 의적 로빈 후드가 전국의 영주들을 이끌고 국왕을 압박해 영국 헌정의 기초인 대헌장(Magna Carta)을 낳게 한다는, 다소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동화 속 왕자와 공주 이야기를 뚱뚱하고 못생긴 괴물로 바꿔 놓은 ‘슈렉’ 시리즈 4편은 지난주 미국에서 개봉돼 이미 흥행 1억 달러를 넘어섰다(국내는 8월 개봉).
이렇듯 전복 스토리가 넘쳐나는 세상은 뭘 말해주고 있을까. 혹시 한번 주인공이 늘 주인공인 줄 알면 큰 오산이라는 교훈은 아닐까. 자신들의 지위를 과신하고 민의(民意) 읽기를 게을리했다가 2일 지방선거에서 아찔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겐 왠지 남의 얘기가 아닐 것 같다.
송원섭 JES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