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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규제 여전히 많다] 上. 상속받은 논도 못팔면 벌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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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농림부가 최근 도시민의 소규모 농지 취득을 허용키로 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경직된 농지 규제가 많아 쌀값 하락에 허덕이는 농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두차례에 걸쳐 실태와 대책 등을 살펴본다.

◇ 여전히 많은 규제=외환위기로 실직해 고향인 강원도 원주로 내려온 林모(41)씨는 스키 시즌만 되면 속이 탄다.

집이 스키장 옆에 있는 점을 활용해 농한기인 겨울철에 비어 있는 창고를 개조, 스키용품 대여점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 땅이 농업진흥지역으로 분류돼 다른 용도로 쓸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원래 논이었지만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땅이 잘려나가는 바람에 창고를 지어 쓰고 있는데도 여전히 진흥지역으로 묶여 있는 것이다.

경기도에 사는 高모(52)씨는 낡은 농가 주택을 헐고 2층짜리 양옥을 짓고 2층에 민박을 유치해 하루 평균 3~4만원의 짭잘한 수입을 올렸다. 그러다 불법 전용이라고 고발돼 민박을 포기해야 했다.

경북 구미시 외곽에서 벼농사를 짓는 鄭모(56)씨의 집은 도로에 편입돼 철거됐다. 보상비가 나왔지만 다른 집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자신의 자투리 농지(1백5평)에 집을 짓기 위해 건축 허가를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우량농지를 보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농업외 소득이 적은 우리 농가의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농지 이용에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본.대만 농가의 농업외 소득은 80%를 넘지만 우리 농가의 농업외 소득은 50%수준에 불과하다.

◇ 까다로운 농지 소유 및 거래="서울에 살고 농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속받은 농지라도 3천평 이상은 소유할 수 없다고 한다. 1천평을 떼어 팔려니까 쌀값 하락으로 논값이 떨어져 사려는 농민도 없다. 동네에 온통 나이드신 어른 뿐이라 대신 농사를 지어줄 사람도 못찾았다. 그런데 논을 놀리거나 1년안에 팔지 않으면 벌금이 나온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지난해 봄 지방에서 농사를 짓던 모친이 사망해 4천평의 논을 물려받은 金모(35)씨의 푸념은 농지의 소유.거래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농지법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목상 농지가 아닌데도 3년 이상 농사를 지으면 사실상 농지로 보는 규정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지방에 학교를 세우기 위해 지난 해 3월 임야 4만8천평을 사들인 한 학교법인은 지목이 임야인 이 땅에 마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배추.고구마 등을 재배해 왔다는 이유로 농지조성비까지 물어야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주민들이 남의 땅에 불법 경작한 것인데도 농지조성비를 내야 하느냐"며 억울해 했다.

◇ 농지분류에 대한 불만도 많아="95년 경기도 용인시의 농지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택지로 본격 개발되기 전이었다. 그런데도 용도 전용이 규제되는 진흥지역으로 분류된 농지가 한평도 없었다.

아마 힘 있는 사람들이 소유한 땅이 많아 진흥지역에서 빠진 것 같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진흥.비진흥지역으로 나누는 현재의 농지 구분이 불합리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건이 좋지 않은 농지인데 진흥지역으로 묶여있는가 하면 평야지대의 우량농지인데도 용도 전용이 쉬운 비진흥지역에 포함된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도 벽제에 7백평의 농지를 갖고 있는 黃모(54)씨는 "도로에 맞붙어 있고 인근 지역이 모두 주거지역인데도 내 땅만 진흥지역으로 지정돼 있다"며 "현재 사는 집과 거리가 멀어 농사를 짓기도 힘든데 규제에 묶여 무용지물이 돼버린 상태"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철근 기자

*** 농지규제 주요 내용

▶농지는 원칙적으로 농민만 소유할 수 있다='국가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 달성에 노력해야 하며, 소작제도는 금지한다'(헌법 121조)

▶상속받은 농지라도 3천평 이상은 소유할 수 없다='농업인이 아니더라도 상속에 의해 1만㎡이내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농지법 6조2항)

▶농지에 농사를 짓지 않으면 팔아야 한다='소유농지를 정당한 사유 없이 자기가 농업에 이용하지 않은 경우 그 때부터 1년안에 당해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농지법 10조), '농지소유자가 기간내 처분하지 않을 경우 처분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농지가액의 2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농지법 11조)

▶절대 농지는 농업외 다른 용도로 쓸 수 없다='농업진흥지역에서는 농업생산.농지개량과 관련된 행위만 할 수 있다'(농지법 34조1항)

▶진흥지역내 농가주택은 민박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농업인 주택은 농업인 세대가 주거생활과 농.임.축산업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시설이다'(농지법 34조2항)

▶실제 농지로 이용되면 지목상 농지가 아니라도 농지로 본다='농지는 법적 지목 여하에 불구하고 실제의 토지현상이 농작물의 경작에 이용되는 토지다'(농지법 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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