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경남 통영을 찾아 화가 전혁림 선생과 만났던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이 자기 책 『길 위에서 띄우는 편지』에서 한 말은 덕담 그 이상이다. 94세 작가에게 올린 글 제목은 ‘지금 모습 그대로 100세 특별전에서 만나기를’이라고 했다.
그 책은 국토순례 현장에서 얻었다. 국감 때 국회의장이 순방외교에 나서는 관례 대신 김 의장은 이 땅의 삶과 문화를 확인하고 싶었고, 그래서 현대제철·나로우주센터 등을 두루 돌아봤다. 문화현장도 잊지 않았는데, 일정 맨 앞에 통영 방문 일정을 잡았다. 그렇게 노대가를 만난 1년이 못 돼 부음 소식을 들었다. 그게 지난주다. 자신의 의장직 퇴임과 겹쳐 부득이 추도사만 보내야 했다. 대신 읽은 건 전혁림의 오랜 후원자인 김이환 이영미술관장인데, 추도사는 “5년만 더 참지 벌써 가시느냐?”며 애석함으로 가득했다.
그건 통영 사람 누구나 그랬다. 전혁림은 해방 직후 시인 유치환·김춘수, 작곡가 윤이상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든 주인공이다. 문화사의 큰 이름인 소설가 박경리, 연극인 유치진, 시인 김상옥을 포함해 통영은 문화도시인데, 그 중 전혁림은 왜 전혁림인가? 뜨르르한 예술인 중 평생 고향을 지킨 이는 그가 유일하다. 그러고도 늠름히 대가 반열에 올랐다. 평생 쏟아낸 작품도 고향을 품어왔다. 짙은 코발트블루로 남해안 고향의 쪽빛 바다와 하늘을 담아왔고, 그래서 요즘 통영 시내 보도블록은 물론 통영대교 그림도 온통 그의 작품이다. 이번 장례식이 통영예술인장인 것도 당연했을까?
장례식 마무리도 의미심장했다. 고인의 말대로 “붓을 쥐면 죽음을 잊을 수 있었고, 그래서 필사적으로 작품에 매달렸던” 현장인 작업실 근방에 묘소를 배치한, 파격의 구조다. 본래는 이웃 고성의 공원묘지로 모시려 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는 걸 알면 운구차가 꼼짝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고인의 삶과 죽음(풍화리 작업실), 예술(봉평동 전혁림미술관) 모두를 통영 땅에 담기로 결정했다. 실은 스페인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고향 피게라스도 달리미술관에 생가·묘소가 함께 있는데, 요즘 문화명소로 이름 높다.
조우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