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요트 … 꿈을 향해, 끝없는 항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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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 전곡항에서 세일링요트를 즐기고 있는 요트클럽 회원들. 사진은 홍진영(35ㆍ사진 오른쪽)씨와 그의 가족.

#1 전교생이 요트 타는 중학교

지난달 22일 경남 남해군 물건리 남해요트학교. 까까머리 소년 하나가 1인승 딩기 요트를 몰고 유유히 물건항을 빠져나갔다. 흰 세일이 솟구쳐 있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바다 일 나가는 고깃배라고 했을 것이다. 러더(키)를 잡은 선장은 물건중 1학년 한정훈군. 지난해 마을 어부회관이 요트학교로 바뀌면서 배 타는 일은 소년의 일상이 됐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세일링, 평일에도 학교를 파하기 무섭게 요트학교로 달려온다. 동네에선 이미 ‘마린보이’로 이름 높다. 혼자 요트를 몰고 방파제 너머 거친 바다를 능수능란하게 유영한다. “요트를 타고 큰 바다로 나가고 싶다”는 게 소년의 꿈. 그러나 고기 잡는 아버지는 요트 타는 정훈이가 마뜩잖다. 연안어선 한수호의 선장인 아버지는 “쓸데없는 짓 말고 배 타고 일이나 가자”고 하지만 소년은 고깃배는 싫다. 세일에 바람을 가득 품고 질주하는 요트가 좋다. 물건리는 멸치잡이로 유명한 전통적인 어촌 마을이다. 아마도 한 세대 전, 이 마을 소년들의 미래는 갯것을 가득 실은 만선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트학교가 들어선 지 2년째, 아이들의 꿈은 물건항 포구 너머 대양에 있다. 물건중 30명의 학생은 모두 요트학교에 등록돼 있다.

#2 ‘대서양 건너는 꿈’ 꾸는 교수님

세일링을 나가기 전, 갑판에 모여 있는 크루(선원)들. 크루저요트는 최소 4명 이상의 크루가 필요하다.

KAIST 연구교수로 일하는 이준(40)씨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남해요트학교를 찾는다. 연구교수라는 직함이 무색할 정도로 까맣게 탄 그의 얼굴이 요트 인생을 대변한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던 14년 전 요트에 입문했다. 1인승 요트, 크루저 요트 모두 섭렵했다. 크게 돈 들이지 않아도 됐다. 크루저급은 포지션별로 크루가 네다섯 명은 돼야 하기 때문에 기술만 있으면 얼마든지 요트클럽에 가입해 배를 탈 수 있었다. 그의 꿈은 트랜스애틀랜틱요트대회에 있다. 6.5m 길이의 ‘미니650’ 1인승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요트대회다. 프랑스를 출발해 아프리카 카나리제도를 거쳐 브라질까지 약 4500㎞를 항해해야 한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처럼 두 달 동안 혼자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솔로 요트의 최고봉이다. 일단 5000만원에 육박하는 미니650을 구입해야 한다. 그의 연봉으로는 버거운 금액이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평생을 품어 온 꿈이기 때문에 실력과 비용, 모두 차근차근 준비할 생각이다. 아마 백발이 성성한 60대가 돼서야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좋다. “요트는 본래 로망이었니까.” 가슴속에 로망 하나를 품고 사는 것만으로도 그는 좋다.

두 사내의 꿈은 바다소년이라면 누구나 품어 봄 직한 로망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꿈은 이제야 일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요트는 특별한 사람들의 레저’로 생각됐다. 그러다가 2~3년 전부터 각 지자체와 요트협회·클럽에서 운영하는 요트학교가 생겨났다. 경남에만 6곳의 학교가 있고, 전국적으로 20여 곳에 이른다. 지난해 경남에서 요트학교를 거쳐 간 사람은 총 2만여 명, 올해는 4만 명을 예상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세계적인 ‘요트 히어로’들이 매년 한국을 찾고 있기도 하다. 9일부터 경기도 화성 전곡항에서 열리는 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이다. 찾아보면 로망을 키울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요트는 그리 어렵지도 않고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된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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