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시론 - 6·2 그 후

① 민심은 역시 무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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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궁금한 점은 왜 그런 표심이 숨어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 여론조사의 방법론적 오류도 있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다. 대통령이나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경찰·검찰·선관위 등 권력 기관에 의해 제압당하고, 최근 방송인 김제동씨의 경우에서 보듯이 집권층의 눈에 거슬리면 하던 일에서도 쫓겨날 수 있는 억압적 상황을 의식한다면,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이 잘하느냐 못하느냐, 혹은 여당을 찍겠느냐 야당을 찍겠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속내 그대로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 ‘야당 찍을 거다’고 말하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위압적 분위기로 인해 흐르지 못하고 갇혀 있던 민심이 지방선거를 통해 세차게 터져 나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선거 결과를 지켜보면서 현 집권세력이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 너무 둔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난 대선의 성공적인 구호였던 ‘잃어버린 10년’의 주장이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 대통령과 여당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형국으로도 보인다. 정치적인 구호로서는 지난 10년이 잃어버린 시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국민은 그 시기 동안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해 왔고 그 환경에 적응해 왔다. 그러나 현 집권층은 그 시기를 정말 잃어버린 시기로 생각하고 그 이전으로 시계추를 되돌리려는 행동을 해 왔다.

일전 마산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는 자기의 차에 탄 승객이 정치 관련 이야기를 걸어오면 아예 대응을 안 한다고 했다. 말 함부로 하면 잡혀갈까 봐 겁나서 입을 다문다는 것이다. 당시 그 말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시민적 자유가 이전에 비해 크게 침해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대표 축구경기에서 우리 팀이 져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고 말할 만큼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권위에 대해 서슴없이 비판할 수 있었던 경험은 권력이 바뀌었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의 시기에 성장해온 젊은 유권자들은 정치적 의사표현이나 집회 같은 기본적인 시민적 자유를 국가 권력이 제약하려 들 수 있다는 사실을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경험해 보았다.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 활용하려고 한 전략이 역풍을 맞게 된 것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잘못 이해한 탓이다. 여당에서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고조가 과거 냉전시대처럼 여당에 대한 표의 결집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국민들은 지난 10년간 적어도 이번처럼 남북한 간 전쟁의 가능성이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상황은 경험해 보지 않았다. 잃어버렸다고 주장한 그 10년간의 경험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북풍(北風)’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이다. 특히 군사적 긴장의 고조는 징집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을 분노하게 했고 이들을 대거 투표장으로 이끌었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통령 선거,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거둔 잇따른 압승은 명백히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컸다. 그렇다고 해도 그러한 승리가 그 기간에 이뤄진 모든 변화를 부인하거나 지워버리고 그 이전의 냉전적·권위주의적 시대로 되돌아가라는 요구로 볼 수는 없다. 입법 권력, 행정 권력, 지방 권력까지 모두 지녔던 힘의 집중이 오만함을 낳았고 시대적 변화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도록 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국민의 평가는 매우 냉정하고 무서운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국정운영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패배는 이번으로 끝이 아닐 수도 있다. 되돌아보면 열린우리당의 몰락도 2006년 지방선거부터 시작되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