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일 칼럼] 이젠 교육대통령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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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늘날 우리는 싫든 좋든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각자 자기분야에서 세계 최고 혹은 세계 일류가 되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교육분야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교육부문에 관한 한 학생과 기업들의 일류 선호 자체를 '학벌주의 혹은 일류병'으로 문제시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 지식기반 사회의 승부수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학의 발전을 위해 40여년간에 걸쳐 많은 개혁을 해낸 어느 총장이 백여년 전에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어느 만찬석상에서 한 교수가 "총장께서 취임한 이래 우리 하버드대학은 지식의 보고가 되었다"고 총장의 노고를 치하하자 그 총장은 "당신 말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단지 신입생들은 많은 지식을 갖고 들어오는데 졸업생들은 별로 갖고 나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농조로 받아넘긴 말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었다면 하버드대학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태되지 않고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이미 세계는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기반 사회'시대에 들어와 있다. 이 지식기반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발전해 나갈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이자 가치창출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지식기반 사회에서의 개인 혹은 국가간 경쟁은 결국 국민 개개인이 받게 될 교육의 내용과 질에 의해 판가름나게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과거 산업화시대의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빈약했기 때문에 산업화 경쟁에서 크게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지식기반 사회를 맞은 오늘의 우리나라는 과거 어느 때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국제경쟁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기반 사회의 가장 큰 자산인 무한한 교육열을 지닌 우수한 인력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천혜의 자산도 우리 교육의 내용과 질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그 진가가 발휘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창의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식기반 사회에서 암기위주의 교육방식이 통하겠는가. 영재교육은 무시한 채 교육수준의 하향 평준화와 영재(英才)의 범재화(凡才化)마저 우려되는 고교평준화 시책만을 고집하면서 지식기반 사회의 국제경쟁에서 앞설 수 있겠는가.

더욱이 기계가 아닌 지식을 가진 사람과 사람의 접촉과 네트워킹에 의해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남을 이해하고 남과 더불어 사는 지혜가 무엇보다 강조되는 인성교육의 강화 없이 경쟁력이 생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금년 들어 새로 실시된 경기도 일원의 고교평준화 시책과 기업 취업서류에 학력난을 없애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아이디어를 보며 우리의 교육정책 당국은 아직도 문제의 핵심은 무시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얽매여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연 7조원에 이르는 사교육비 지출과 '과열과외'가 공교육을 황폐화하는 원인이 아니라 공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긴 큰 부작용이 아닌가. 또한 이것은 고교평준화 시책과 입시.정원 등 대학 학사행정에 관한 지나친 간섭, 그리고 초.중.고교 교사의 처우개선 및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교육재정 확보에 대한 사고의 경직성 등 현행 교육시책에서 주로 연유된 것 아닌가.

학벌주의와 일류병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육부문에서도 경쟁을 기초로 한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 모든 대학이 일류가 되기 위해 전력을 경주하도록 해야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 대학 일류화 적극 지원을

결론적으로 말해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는 지식기반 사회에 초점을 맞춘 교육부문 전반에 걸친 개혁이다. 과거 절대빈곤의 악순환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발전과 안정에 주력하는 '경제대통령'이 필요했던 것처럼 이제 선진 일류국가 건설을 위해 교육부문의 진정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안목과 자질을 갖춘 '교육대통령'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이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교육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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