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량의 월드워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화해 이루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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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가 악화일로다. 마치 한 레일 위를 두 대의 기관차가 마주보며 달리는 듯한 형세다. 팔레스타인이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하면, 이스라엘은 무장헬기와 탱크 심지어 전투기까지 동원해 몇 배로 보복을 가한다.

살인이 살인을 낳고, 보복이 보복을 낳는 악순환이다. '땅과 평화의 교환'이라는 1993년 오슬로협정에 따라 추진해온 평화협상은 중단된 채 재개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는 사실상 계엄 상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동의 자유마저 제한받고 있다. 실업률이 50%에 이를 만큼 경제상황은 최악이다.

최근 두드러진 현상은 '황무지작전'으로 불리는 민간인 주택 파괴다. 얼마전 가자지구의 라파에선 이스라엘군이 불도저를 동원해 58채를 파괴하는 바람에 주민 7백명이 한꺼번에 노숙자로 전락했다. 라파에선 지난해에도 2백채가 파괴됐다.

야세르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기능 마비다. 아라파트는 지난해 12월부터 라말라의 자치정부 청사에 억류돼 있다. 반대로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은 호기를 잡았다. 이스라엘 국민의 74%가 샤론의 초강경정책을 지지한다. 미국으로부터도 일방적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만났던 샤론은 다음달 7일에도 부시와 회담을 한다. 아라파트는 부시가 취임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만나지 못하고 있다.

빌 클린턴과 달리 부시는 중동평화에 소극적이다. 취임 후 불개입을 표방했다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가 악화되자 비로소 개입했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요인 암살을 묵인하는 등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특히 9.11 테러 이후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테러 지원세력으로 간주,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 3일 홍해에서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던 무기 밀수선이 나포되자 아라파트와의 관계를 완전 단절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다.

샤론은 이같은 상황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계산이다. 목표는 아라파트 제거, 오슬로협정 폐기, 팔레스타인에 넘긴 점령지의 재점령이다.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6할을 확보하고 있는 이스라엘로서 재점령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길 경우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아랍권과 국제사회로부터 격렬한 반발이 예상된다. 아라파트 제거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아라파트보다 상대하기 어려운 강성(强性)인물이 대신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피해자 의식'이다. 나치 독일의 대학살을 겪은 피해자이므로 어떤 짓을 해도 무방하다는 일종의 면죄(免罪)의식이다.

핵폭탄을 2백~3백개나 갖고도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등 핵무기와 관련된 어떤 의무도 지지 않고 있으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나라를 잃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겪어온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출신 문명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인을 가리켜 '피해자의 피해자'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진정한 화해를 이루려면 잘못된 피해자 의식을 버려야 한다. 이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자기만 생각하고 상대방은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는 평화를 달성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리고 미국은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는 공정한 중재자로서 평화협상을 리드해야 한다.

정우량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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