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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흥은 이희건 前회장부자 체포 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간사이(關西)흥은의 이희건(李熙健)전 회장 부자가 동시에 경찰에 전격 소환된 것은 재일동포 사회뿐 아니라 일본 금융계에도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李전회장은 동포사회의 대부(代父)격으로, 한.일 양국의 정.재계를 잇는 고리 역할도 해왔다. 지금껏 동포 상공인들에 대한 금융지원에서도 그는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간사이흥은이 도산하고 李전회장 자신도 체포됨에 따라 동포사회는 경제기반을 떠받쳐줄 구심점을 잃게 됐다.

특히 동포기업이나 동포 신용조합들은 이번 일로 부실 또는 부정이란 딱지가 붙어 일본 금융기관들로부터 돈을 빌리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일본 금융계도 긴장하고 있다.간사이흥은과 꾸준히 거래해온 일부 은행들은 일본 당국의 수사과정에서 자신들에게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수사 배경=부실화된 동포신협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공적자금은 약 1조엔으로 추산된다. 일본 당국은 경영책임과 부실채권 규모를 명확히 가려 거액의 공적자금 투입 명분을 찾겠다는 차원에서 강도높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동포신협은 재일동포들이 출자했지만 엄연히 일본 금융기관이므로 법대로 하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방침이다. 한.일 관계나 동포사회에 대한 정치적인 배려는 없다.

일본 정계에서도 재일동포들간의 거래로 생겨난 부실자산을 처리하기 위해 일본 국민의 세금을 사용해야 하므로 부실화에 대한 법적 책임을 확실하게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국은 지난해 조총련계 신용조합의 경영진과 간사이흥은에 이어 제2위의 동포신협이던 도쿄(東京)상은의 김성중(金聖中)전 이사장 등을 구속했다.

◇ 동포 신용조합 왜 이 지경 됐나=일본의 거품경제가 무너지면서 담보로 잡아뒀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대출기업이 도산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일본 금융기관들이 엄청난 부실채권을 양산한 것과 같은 배경이다.

원래 동포 신용조합의 대출고객은 일본 은행들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할 정도로 영세하거나 신용이 낮은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다. 동포신협들은 사업전망과는 관계없이 담보만 잡고 대출을 해주거나 영세업자들에겐 신용으로 빌려주기도 했다. 처음부터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영업을 해왔던 셈이다. 그 중에는 부정대출과 적정대출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도 적잖았던 것이 현실이다. 이런 구조에서 일본의 경기위축으로 동포들의 영세기업들이 많이 쓰러지자 결과적으로 부정대출로 내몰리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 간사이흥은의 경우는=문제의 코마컨트리클럽은 李전회장이 1980년 간사이 지역의 동포기업인들과 함께 설립한 것이다.고급 골프장으로 회원권이 한때 8천만엔에 달했고 운영사인 코마개발은 무차입 경영을 할 정도로 실적이 좋았다.

97년 18홀을 27홀로 증설하면서 간사이흥은 등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위축으로 된서리를 맞아 지난해 4월 2백90억엔의 부채를 안고 도산했다. 간사이흥은은 대출을 시작할 당시 코마개발의 경영이 건전했으므로 부정대출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부실조짐이 나타난 뒤에 이뤄진 20억엔에 대해 문제삼고 있다.

◇ 동포사회에 큰 악재=지난해부터 동포 금융기관의 부정대출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선의의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가뜩이나 문턱이 높은 일본 금융기관들은 동포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을 상대도 하지 않고 있다. 간사이흥은에서 대출을 받아쓰던 동포기업들은 한두번 빚상환을 연체라도 하면 당장 가혹한 채권회수 조치를 당하게 된다.

또 오는 4월 예금자보호 상한제 실시를 앞두고 중소금융기관의 예금이탈도 우려된다. 한국정부.민단.동포기업인들이 추진하던 민족은행 설립도 좌절돼 기존의 동포신협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이 고비를 넘겨야 할 판이다. 여기에 최근 불어닥친 일본의 광우병 파동으로 전국 2만여개의 한국 음식점들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동포사회 경제활동 전반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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