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격동의 시절 검사 27년 (3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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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검사의 길

28. 서울검사장 시절

1989년 3월 부산검사장에서 서울지검장으로 영전했다.

서울검사장은 검사라면 누구나 한번 해보고 싶은 자리다. 그러나 고되고 신경이 쓰이는 자리다. 그래서 서울검사장은 한번 했다는데 의미를 두면 됐지 오래 할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강도 해치고 언제 어떤 일이 터져 불미스러운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

서울검사장은 실제로 대검 밖에 있는 검찰총장의 참모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농담으로 대검차장은 전국차장이고 서울검사장은 수도 서울 차장이라고 한다. 아마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중요 사항은 총장이 서울검사장에게 직접 알아보고 챙기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닌가 싶다.

서울지검은 처리하는 사건 수는 물론 사건 내용에서도 정부와 정권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 법무부와 대검의 관심이 컸다. 그래서 서울검사장은 매일매일 긴장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검사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법무부장관은 교정국을, 검찰총장은 서울지검만 잘 챙기면 된다'는 농담이 있다. 교정국의 경우 교도소 재소자 탈출 사건이나 교도관 비리 사건 등으로 장관이 경질 위기에까지 가는 상황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검사장으로 재직한 1년 동안 검찰 수뇌부들이 관심을 가진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소설가 황석영씨와 문익환 목사 밀입북 사건, 김현희 KAL기 폭파 사건, 전두환 대통령 처남 이창석 사건, 장세동 전 안기부장의 일해재단 비리 사건, 민주당 동해 재선거 후보 매수 사건, 전대협의장 임종석 밀입북 사건, 임수경.문규현 신부 밀입북 사건, 전교조 파문, 전민련 등 좌경 학생 운동 및 이들의 대학가 불온서적 유포와 지하 서클 활동, 유원호 밀입북 사건, 5공 청산 사건들에 대한 국회 고발 위증 사건, 평민당과 조선일보 맞고소 사건, 신상옥 최은희 월북 사건, 전민련 상임의장 이부영 구속 사건, 전 민주당 박재규 의원 수뢰 사건, 백화점 사기 세일 사건, 민생 사범 특별수사부의 조직폭력배에 대한 집중 단속, 김태촌 등 서방파와 양은이파 두목 구속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서울지검장에 부임해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새로운 청사가 완공돼 이사를 하게 됐다. 서소문에서 서초동으로 청사를 옮기게 되면 그동안 매일 아침 있었던 검찰총장에 대한 보고가 문제였다. 검사장인 내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이상해 며칠간 총장 눈치만 보고 있다가 먼저 거론했다.

총장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보고를 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총장의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건물에 대검과 서울고검, 지검이 있어서 서울지검장은 아침마다 아니 수시로 총장에게 보고해왔다. 서울지검이 서초동으로 이사가는 것이 총장에게는 맏며느리를 분가시키는 심경이었을 수 있다. 나는 총장에게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정기적으로, 특별한 일이 있으면 수시로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총장도 "그게 좋겠다"며 승낙했다. 요즈음 계속되는 서울지검장의 주 2회 총장 정기 보고는 그렇게 정해졌다.

그런데 서초동 청사로 옮긴 뒤 여러 잡소리가 총장 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서초동으로 이사를 가더니 서울지검 직원들이 출근시간도 잘 안 지킨다는 것 등이었다. 내가 보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직이 크고 일이 많다 보니 서울지검장이 총장에게서 꾸중을 듣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나는 총장의 꾸지람을 서울지검 간부들에게 모두 전하지 않았다. 매번 들은 것들을 일일이 부하들에게 전한다면 오히려 총장을 욕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부하들의 사기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총장의 꾸지람은 서초동으로 오는 동안 한강 물에 빠뜨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청사로 돌아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적당한 기회가 있을 때 총장의 지적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간부들에게 전했다.

김경회 <전 한국 형사정책 연구원장>

정리=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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