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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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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96년 9월 26명의 무장 간첩을 실은 북한 잠수함이 강릉 앞바다로 침투했다. 13명 사살, 11명 자폭, 1명 생포라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온 나라가 들썩거린 이 사건은 유엔으로 무대를 옮겼다.

뉴욕의 유엔 본부 건물 2층, 안보리 회의장 옆엔 문패도 없는 '크지 않은 사무실'이 있다. 당시 이곳에서 안보리 15개 이사국이 격론을 벌여 의장의 대북 비난 성명을 채택했다. 중국이 강력 반대했지만 당시 박수길 유엔 대사를 사령탑으로 밀어붙여 한국 입장이 관철됐다. 얼핏 대단치 않아보이지만 그게 아니다.

안보리 옆 문패 없는 사무실은 '세계를 요리하는' 곳이다. 여기서 이사국들은 하고 싶은 말 다하며 실컷 논쟁을 벌인다. 의사록도 없고, 따라서 기록도 없다. 비공개에다 외부 인사도 출입금지다. 분쟁 당사국도 이사국이 아니면 못 들어간다. 유엔 사무국의 특급 정보도 제공된다.

이사국이 아니면 자기 나라의 '처지'가 결정되는 근처를 서성대야 한다. 한국이 96년 의장성명 채택과정에 낄 수 있던 것도 당시 비상임 이사국이었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의 지위는 그렇게 세다. 그래서 요즘 안보리 개혁 논의 바람을 타고 일본.독일.인도 같은 나라들이 기를 쓰고 이사국이 되려는 것이다.

그러면 안보리 이사국을 24개로 늘리는 논의를 타고 한국이 다시 이사국의 꿈을 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개혁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유엔 고위 패널은 새 이사국의 자격 기준을 ▶유엔 예산 기여도 ▶정부개발원조(ODA) 규모 ▶평화 유지군 파견 병력수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만 비교해보자. 한국과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었던 때인 2003년(1만2020달러), 85년(1만1423달러)을 비교한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비슷한 소득대에서 일본의 ODA는 3796달러, 우린 365달러다. 유엔 분담금도 일본은 전체의 19%, 한국은 2% 수준. 일본은 '세계 2위의 기여'를 하고 있다.

한국은 이탈리아.파키스탄과 비공식 모임인 '커피클럽'을 만들어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 소위 '커피 한잔 하는'모임을 통해 진출 희망국을 좌절시키는 전략을 짜고 있다. 한국이 겉으론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인색하고 '남 안되게 하기'엔 열심인 나라로 비칠까 걱정된다.

정치부 안성규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