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후텐마·정치자금 부메랑 …‘도련님 총리’ 끝내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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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총선 압승으로 출범한 ‘고바토(小鳩)정권’은 말 그대로 이들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2인3각의 공조를 발판으로 탄생했다. 하토야마가 취임 일성으로 “54년간 이어진 자민당 체제를 청소하고 일본의 정치풍토를 바꾸자”고 외치자 국민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고바토 정권의 한계는 바로 노출됐다. 잦은 말바꿈과 현실과는 먼 정치공약들이 고바토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하토야마는 이날 20분에 걸쳐 자신의 실책들을 회고하면서 지난달 제주도 한·중·일 회담 때 호텔 정원에 날아든 제주직박구리(일본명 히요도리) 한 마리를 보고 그만둘 때가 됐음을 예견했다는 말을 할 때는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그는 “내 집에 같은 새가 있다. 슬슬 집으로 돌아오라고 지저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2일 동반 사퇴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왼쪽)와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이 이날 민주당 양원 총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하토야마는 또 이날 평소 지론대로 “총리를 지낸 사람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며 “차기 총선이 실시되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대 실책은 ‘후텐마(普天間) 공약’이었다. 미국과의 대등한 외교를 기치로 내건 이 공약은 미·일 관계를 크게 흔들었다. 하토야마는 이 기지를 오키나와(沖繩)현 밖으로 옮긴다고 선언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연립정권 파트너인 사민당이 이에 반발해 이탈한 것은 하토야마 내각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 밖에 중학교 졸업 때까지 매달 2만6000엔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무료화하겠다는 비현실적인 공약은 재원 마련 부족으로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 다른 공약들도 대부분 부도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이게 75%로 출발한 내각 지지율을 8개월 만에 17%로 끌어내렸다.

‘총리로서의 그릇’도 논란이 됐다. 하토야마는 총리를 지낸 할아버지(하토야마 이치로)와 기업가 출신(브리지스톤)의 모친을 둔 일본판 케네디가(家) 출신이다. 그러나 1993년 옛 민주당을 창당할 때 어머니의 자금 지원을 받는 등 화를 자초했다. 하토야마는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며 민주당을 만들었지만 나 자신이 정치자금으로 문제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한편 이번 사퇴로 일본 국민들은 자민당 출신의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총리에 이어 다시 한번 스스로 정치력을 쌓지 못한 ‘도련님 정치인’의 한계를 절감하게 됐다. 이들은 모두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총리를 지냈던 세습 정치인들이다. 모두 1년을 채우지 못한 단명 총리가 됐다.

8개월 만에 물러난 탓에 하토야마가 국제무대에서의 일본 입지를 또 한번 좁혀놨다는 비판도 나온다. 와세다(早稻田)대 정치학과 이용철 교수는 “엊그제 한·일·중 정상회담을 해놓고 바로 물러난다면 (일본 총리는) 신뢰를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과거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와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는 ‘가쿠후쿠(角福)전쟁’으로 불릴 만큼 정치력으로 서로 경쟁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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