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수들 성실성·열정이 최고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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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엘튼 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비롯한 월드 스타들과 작업해 온 미국 작곡가 겸 프로듀서 피터 라펠슨(50·사진)은 미국 팝계의 대표적 ‘친한파’다. 2003년부터 한국 가수들의 노래가 미국에서 유통될 수 있도록 도와왔다. 보아·신화·플라이투더스카이·이정현·김완선과 함께 작업했다. 그가 작곡한 신화의 ‘헤이컴온’과 보아의 ‘돈 스타트나우’는 아시아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 가수들이 미국 시장의 문을 활발하게 두드리는 상황에서 최근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를 만나 생각을 들어봤다.

-한국 가요의 미국 시장 진출이 잘 되고 있나.

“한국에는 세계적 스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가수가 많다. 한국 음악 소비자들의 팝 컬처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팝 문화를 더 잘 안다는 생각이 가끔 들 정도다. 미국인은 미국 것이 아닌 음악에 무관심하고 배타적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미국 시장은 첫 진입이 어렵다. 하지만 일단 멋진 감각의 좋은 음악이라고 받아들여지면 인종·국적이 상관없는 곳이기도 하다. 미 소비자들에게 가수가 미국인이냐, 아시안이냐, 코리안이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쿨하냐(멋있느냐), 아니냐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의 10대들을 직접 만나보니 보아나 원더걸스 등의 음악을 즐기고 있더라.”

-한국 가수들과 일해본 소감은.

“그들은 나의 음악 인생에도 새로운 영감을 줬다. 내가 운영하는 라펠슨 미디어 컴퍼니(RNC: 음반·영화 제작사)에는 한국 기획사들의 방식을 벤치마킹한 ‘연습실’도 있다. 한국 가수들의 트레이닝은 거의 군대 수준이다. 열너댓 살 무렵의 보아가 하루 종일 노래와 춤, 영어·일어·중국어 공부를 하는 걸 보면서 ‘이렇게 열심히 하면 누구도 상대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연습이나 미팅 시간에 절대 늦지 않고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정신은 한국 가수들만이 가진 최고의 경쟁력이다.”

- 그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닐 텐데.

“물론이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실패하면 아픔이 더욱 클 것이다. 다소 보수적인 한국 취향과 섹시함으로 어필해야 하는 미국적 취향을 오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섹시하다’고 느끼는 코드가 문화권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과 아시아에서 미리 인기를 다져놓는 게 미국 진출에 과연 도움이 되느냐도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JYP 소속 일부 가수들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유리한가.

“스타가 되기는 여자 가수가 쉽지만 ‘수퍼 스타’가 될 가능성은 남자 가수가 더 크다. 남성팬은 ‘동물적 감각’에 의존한다. 여자 가수가 ‘핫’하다고 느끼면 그냥 좋아한다. 웬만큼 노래와 춤이 되는 여자 가수라면 어느 정도 위치까지는 오를 수 있다. 여성팬은 다르다. 멋진 남자 가수에게 끌리긴 마찬가지지만 더 많은 요소와 이미지를 따진다. 남자 가수의 인기는 훨씬 강하고 단단하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가수는.

“(한참 생각하다) 이효리다. 무대에 선 모습을 몇 번 봤는데 대단했다. 프로다운 느낌이 물씬 난다. 비디오도 훌륭했다. 얼마든지 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겠더라. 영어만 잘 하면 꼭 함께 작업해서 미국 진출을 돕고 싶다.”

글=LA지사 이경민 기자
사진=LA지사 김상진 기자
rachel@koreadaily.com

☞◆피터 라펠슨=빌보드 1위에 오르며 전 세계에서 2700만장 이상 팔린 마돈나의 ‘오픈 유어 하트’를 만들었다. 브리트니스피어스가 출연한 ‘크로스로드’영화음악과 폭스TV 드라마 ‘글리’의 사운드트랙 제작에도 참여했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를 연출한 영화감독 밥 라펠슨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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