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강지환, 그는 지금 날아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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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배우 강지환(33)은 처음 팬이 생겼던 순간을 기억한다.

무대 위 그를 놓치지 않던 네 개의 눈동자. 뮤지컬 ‘록키호러픽쳐쇼’에서 앙상블을 할 때였다. 땀을 비 오듯 쏟았는데도 주인공만 스포트라이트 받는 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머리를 짜냈다. 마침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봤다. 조지 클루니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친구를 불러 클루니처럼 목부터 팔뚝까지 타고 내려오는 헤나(염색 문신)를 하고 무대에 섰다. 그날 처음 객석에서 그만 바라보는 두 명이 생겼다.

“그게, 느낌이 와요. 따끔하고 찌릿하게. 그 뒤론 점프도 하늘로 날아갈 듯했고요, 팔다리도 좍좍 벌어지는 거예요. 그때 결심했어요. 20대를 여기에 걸되 서른까지 이 일로 빛을 못 보면, 깨끗이 포기하자고.”

스물네 살에 처음 느낀 흥분. 그것을 엔진 삼아 달렸다. 서서히 가속을 내는 비행기처럼 활주로를 미끄러졌다. 영화 ‘영화는 영화다’에서 탄력을 받고 ‘7급 공무원’을 통해 솟구쳤다. SBS ‘커피하우스’는 그가 창공을 향해 수직비상 중임을 확인할 수 있는 드라마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초반 한 자릿수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긴 해도 SBS 드라마 ‘커피하우스’(월화 밤 9시)는 참신하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송재정 작가와 ‘풀하우스’ ‘그들이 사는 세상’의 표민수 PD가 만난 것부터가 ‘시트콤+로맨스물’의 화학작용을 기대케 한다. 특히 초보 비서 승연(티아라의 은정)을 골탕 먹이는 까칠한 베스트셀러 작가 이진수는 강지환을 위해 맞춤 제작된 캐릭터로 보일 정도다. 서울 방이동 촬영현장에서 강지환을 만났다.

까칠·편집증적인 진수, 내 안에 있다.

“처음 제의 받았을 땐 소설가 이외수씨를 떠올렸다. 외딴 산속에서 집필에 골몰하는 장발 기인. 그 이미지를 비트는 것에서부터 진수가 시작됐다.”

“시놉시스를 봤을 때 뇌리에 꽂히는 단어나 장면 하나만 있으면 주저하지 않는다”는 그는 이번 작품도 컨셉트를 듣자마자 “기발한 아이디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고 했다. 하기야 승연의 눈에 ‘자체발광 완벽남’으로 처음 등장할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경성 시대 플레이보이(드라마 ‘경성스캔들’), 파마머리 악동 영웅(드라마 ‘쾌도 홍길동’), 신분을 위장한 국정원 요원(영화 ‘7급 공무원’)까지 강지환이 걸어온 길과 어울리지 않아서다.

예감은 어긋나지 않았다. 비서가 연필을 원하는 모양대로 못 깎는다고 매일 50자루씩 다시 깎게 하고, 벽을 타고 들려오는 이웃집 야동(야한 동영상) 소음에 잠 못 이루다 비서에게 ‘범인’을 색출하게 한다. “악역이든 밝은 역할이든, 독특한 뭔가가 있는 게 좋다. 심각한 데서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좋아한다”는 강지환의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얼핏 일본 원작 드라마 ‘결혼 못 하는 남자’의 편집증적 주인공과 겹치지만, 훨씬 도회적인 세련미를 풍긴다. 1인승 전기주행기기 세그웨이를 타고 카페 골목을 가로지르는 ‘시크함’을 보라!

이 세그웨이는 그가 직접 준비한 것이다. 모든 작품에서 소품을 직접 챙기기로 유명한 그는 이번에도 성마르고 괴팍하면서도 심미안이 뛰어난 진수를 표현하기 위해 꼼꼼히 연구했다. “작품을 시작하면 머리에 360도 카메라가 달린 듯 주변에서 캐릭터의 빌미가 될 만한 걸 발견해요. 세그웨이는 빌 게이츠가 연구소 단지 안에서 타고 다닌다는 뉴스를 보고 언젠가 써먹어야지 했는데, 이번에 맞아떨어져서 골랐어요.”

진수의 ‘일렬횡대 연필꽂이’도 시중에 파는 게 없어 소품팀에 요청·제작했다. “취미가 청소다. 평소 군대에서 관물 정돈하듯 깔끔하게 정리한다”는 대목에선 진수와 반쯤 겹쳐 보였다.

피라미드로 팬 모집 ‘자수성가형 스타’

배우가 되기 전, 그는 회사원이었다.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그래픽디자인 회사에 입사했다. 어린 시절 영화광인 아버지와 주말마다 개봉 영화를 보러 다니며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일부러 돌아갔다. 전공이 아깝기도 했거니와 “성인으로서 부모님에게 손 벌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년 일하고 1300만원을 저축했다. 그 돈으로 버티며 연기자 길을 두드렸다. 무명 시절 끝에 ‘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 남편 구재희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주목받는 한류 스타다. 지난해엔 일본에서 1만 명 규모(도쿄·고베 각 5000명)의 팬 미팅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때 수백 명 팬에게 일일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를 했다. “남들과 좀 다른 팬 미팅을 하고 싶었는데,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다음 번엔 아예 모노뮤지컬 형태로 일본 팬 미팅을 준비 중이에요. 저만이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거죠.”

팬들에 대한 의리는 팬카페 ‘강지환과 함께하는 사람들’(강함사)에 보이는 애착에서도 드러난다. “소속사에선 공식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자고 했지만, 연기자로 사는 동안은 ‘강함사’가 내 공식 팬사이트예요. 나를 바라보던 네 개의 눈동자 시절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8년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눈뜨자마자 ‘강함사’부터 확인해 왔어요. 다단계 피라미드하듯 지인들을 가입시킨 것도 팬들인데, 그분들이 제겐 더없이 소중하죠.”

정상, 가까운 듯하면서도 쉽잖은

6명으로 시작한 ‘강함사’ 회원이 2만 명을 넘은 게 3년여 전. 그런데 아직도 6만 명에 못 미친다. “10만을 넘기는 게 목표”라면서 덧붙였다. “눈앞에 산꼭대기가 있는데 암벽이 미끄러운 느낌이랄까요. 정상에 올라가려면, 물론 연기 잘하는 게 기본이겠지만, 운이라는 것도 무시 못하는 것 같아요. 한동안은 그것에 대해 날이 서 있었는데, 그래서 ‘까칠하다, 곁을 안 주는 사람이다’ 하는 소리도 들은 것 같아요. 요즘은 달라졌어요. 어느 순간부터 타협하고 편안해졌어요. 저요, 요즘은 회식 가면 테이블 올라가서 춤춰요. 저를 빛내주는 제작·스태프의 노고에 답하고 싶어서요.”

돌아보면 “한 방에 주인공 자리 얻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10년 20년 걸린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요즘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박수칠 수 있는 걸 자랑스러워한다. 차근차근 올라왔다. 게다가 아직 올라갈 계단이 남았다. 그의 비상(飛上)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SBS 제공



강지환은

1977년 3월 20일생, 1m84㎝, 72㎏, B형

뮤지컬

2001 ‘그리스’

2004 ‘록키호러픽쳐쇼’

드라마

2004 KBS ‘알게 될 거야’ ‘꽃보다 아름다워’

2005 SBS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2005 MBC ‘굳세어라 금순아’

2006 MBC ‘90일 사랑할 시간’

2007 KBS ‘경성스캔들’

2008 KBS ‘쾌도 홍길동’

2010 SBS ‘커피하우스’

영화

2005 ‘방문자’

2008 ‘영화는 영화다’

2009 ‘7급공무원’ ‘내 눈에 콩깍지’

수상

2005 MBC 연기대상 신인상·우수상

2007 KBS 연기대상 우수상·베스트 커플상

2008 KBS 연기대상 네티즌상·베스트 커플상,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신인남우상,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영평상 신인남우상

2009 대학영화제 신인남우상, 부산영평상 신인상,

대종상영화제 신인남우상,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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