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검찰 '홀로'서야 '바로'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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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85년 일선 경찰기자로 서울대를 출입하던 때의 일이다.

전두환(全斗煥)정권이 총칼로 집권한 지 몇해가 흘러 사회에 조금씩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대학가에도 당시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던 학생들이 돌아오고 '반독재 투쟁'의 목소리가 제법 높아지고 있었다.

*** 권력부패 사실상 눈감아

그러던 중 '돌발사태'가 벌어졌다.서울 한 복판에 있는 미국 문화원 건물을 대학생들이 점거해 농성을 벌인 것이다. 이른바 '삼민투(三民鬪)사태'다.'광주사태'의 유혈진압을 미국이 묵인했다며 사과하라는 주장이었다.

인상 깊었던 일은 학생들이 스스로 농성을 해제한 후에 벌어졌다. 문교부는 주동학생들을 제명하라고 서울대에 지시했고,서울대엔 비상이 걸렸다. 모두들 "아, 또 몇명 걸려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총장에, 경찰이 학내에 상주하다시피 하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무더기 제적이 예상됐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이현재(李賢宰) 당시 총장과 교수들이 뭉쳐 "정부를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내쫓을 수는 없다"며 문교부 지시를 거부하고 무기정학을 결정한 것이다. 그 일로 총장은 경질됐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대학가는 물론 사회에 엄청난 자극이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무슨 무슨 게이트다 하여 어지럽게 돌아가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서 그때 일이 떠올랐다.

시대는 바뀌었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독재권력은 사라졌지만 그것에 봉사하던 권력조직이 변질된 채 부패와 비리의 악취를 풍기고 있다. 상식과 기본이 회복되기는커녕 정권 말기마다 되풀이되는 '깜짝 부패쇼'는 악화일로다.

현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이트 소동은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청와대.검찰.국정원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전직 청와대 수석과 국정원 고위 간부들이 구속되거나 옷을 벗었다. 검찰총장도 동생의 비리로 중도 하차했다. 어디 그들뿐인가. 이들 사건의 떳떳하지 못한 '조연'으로 확인되고 있는 면면들은 하나같이 권력의 주변에 있었던 인물이거나 지도층 인사들이다.

오죽하면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직업으로 '환경미화원'을 꼽고, 중.고등학생들까지 91%가 한국사회가 부패했다고 했을까.

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도 정해진 법대로 움직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빗나가도 너무 빗나갔다. 사정의 중추기관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다. 일련의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검찰은 로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민감한 부분은 적당히 덮었다가 문제가 되면 다시 들춰내는 카멜레온 같은 모습이다.

그런 검찰 때문에 빚어지는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신임 검찰총장도 '국가와 사회의 안정이 염려될' 정도라고 그 심각성을 인정했다.

그런데도 처방은 갈팡질팡이다. 온통 네탓이고 우회적인 것뿐이다. 언제까지 특검이고, 왜 특별수사검찰청인가. 과연 검찰의 독립과 중립성 상실은 대통령만의 책임이고,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인사위원회가 있어야 지역색을 벗을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은 보조용이고 장식용일 뿐이다.

*** 철저한 내부개혁만이 살 길

해법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명재(李明載)총장의 취임사와 심재륜(沈在淪)고검장의 퇴임사에 그 방법이 담겨 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는 무리지어 낢으로써 집단 양력이 생기고 위엄도 갖춘다."(李총장),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에는 반드시 희생이 뒤따른다."(沈전고검장)

전체를 위해 희생도 각오할 수 있는 리더십만이 검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들은 그런 '혁명적인' 변화를 검찰에 기대하고 있다. 스스로를 지킴으로써 모두를 지키려 했던 교수들의 지혜가 검사들에게는 없는지 답답하다. 검찰 바로 서기는 검사 아닌 다른 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남 탓, 제도 탓할 때가 아니다.

이덕녕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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