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향수 5위 롤리타 렘피카, 알고보니 한국 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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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향수제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향수시장 점유율 5위를 차지한 롤리타 렘피카는 국내 최대 화장품회사인 ㈜태평양이 1백% 프랑스 현지에서 생산하는 향수 브랜드다.

태평양의 파리 현지법인이 1997년 4월부터 생산해 판매하는 이 제품은 지난해 8월 현재 프랑스 여성향수시장에서 2.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수천종의 향수가 경쟁하고, 유명 브랜드만도 3백여종이나 되는 파리에서 신생 브랜드가 단숨에 일군 성적표다.

태평양의 서경배 사장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성공 요인"이라며 "샤넬.겔랑 등 세계적 명품들과 당당히 경쟁하는 브랜드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실패한 최초의 시도=태평양은 90년대 초 프랑스에 PBS라는 법인을 세워 '리리코스'라는 화장품을 생산했으나 파리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최고 경영층을 한국인이 독차지하고 프랑스인에게는 하위직만 맡긴 것이 현지인의 외면을 자초했다.

제품의 진출 순서도 잘못이었다. 태평양은 스킨케어 제품을 먼저 내놓았다. 기초화장품을 만드는 기술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게 패착이었다. 기초화장품보다 향수나 색조화장품을 선호하는 유럽의 화장문화를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 일본 시세이도를 배워라=태평양이 고전하고 있을 때 일본 시세이도는 프랑스 향수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세계 4위의 거대 화장품회사인데도 '메이드 인 프랑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메이드 인 재팬'의 한계를 절감한 시세이도는 마침내 기업명과 국적을 포기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시세이도의 이미지와 철저히 분리한 향수제품 '장 폴 고티에'와 '이세이 미야케'로 대성공을 했다.

◇ 철저한 현지화=시세이도를 벤치마킹한 서경배 사장은 제품의 기획과 마케팅을 모두 파리 현지에서 총괄하도록 했다. 徐사장은 "태평양은 그야말로 돈만 댔다고 할 정도로 현지의 의견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 롤리타 렘피카 등 전문인력과 경영층도 현지인으로 채용했다.

이들이 만든 제품은 동화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 상자 디자인으로 시선을 모았다. 용기의 모양도 사과를 형상화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향수 용기는 으레 사각 모양이어야 한다는 당시의 통념을 깬 것이다.

철저한 현지화에 힘입어 롤리타 렘피카는 발매 1년도 안돼 점유율이 1%에 달했고 올해에는 2.5%를 넘어설 기세다. 한국자본이 만든 메이드 인 프랑스 향수제품이 수십년 전통의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이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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