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위기] 돈도 사람도 "굿바이! 아르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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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페리를 타고 라플라타강을 건너면 우루과이 콜로니아시다.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사람들은 이 곳을 ‘남미의 스위스’라 부른다.

풍광이 스위스와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다. 고객비밀 보호에 철두철미한 스위스 은행들에 해외의 검은 돈이 꼬이듯 아르헨티나의 부자들이 이곳으로 돈을 빼돌리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사람이 페리에서 내려 택시를 잡으면 기사는 이렇게 묻곤 한다. "어느 은행으로 모실까요?" 한 사람이 최대 1만달러밖에 갖고 나갈 수 없는 아르헨티나의 규정도 별 소용이 없다.

일당을 주고 사람을 여럿 사서 돈을 들려 보내면 훨씬 큰 돈도 빼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런 일을 대행해주는 회사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우루과이 중앙은행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예금은 65억달러나 늘어났다. 아르헨티나의 석달치 수출액과 맞먹는 돈이다. 그 대부분이 아르헨티나 돈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떠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이곳의 스페인.이탈리아 대사관은 요즘 이민신청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먹고 살기 어렵게 되자 조상들이 살던 나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빵과 이부자리까지 챙겨 먹고 자면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대사관측은 접수된 신청서를 다 검토하려면 수년이 걸릴 정도라고 말한다.

국가부도 상황인 아르헨티나의 분위기는 4년 전 비슷한 외환위기를 당한 한국의 모습과는 천양지차다.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나라를 살리자'던 분위기는 생각할 수도 없다. 우리와 달리 여러 민족으로 이뤄진 나라라는 이유로도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식자(識者)들은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계층간 반목과 갈등이 커지고, 지도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국민의 환멸감이 극에 달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회계사인 라울 나프탈리(49)는 사회안정의 중심세력인 중산층이 무너지고 사회 전체가 부자와 가난한 자로 양분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한 위기극복은 어렵다. 가령 외부 지원을 받아 고비를 넘긴다 해도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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