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츠는 내친구] 산악스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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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계곡을 따라 바람이 불 때마다 능선 위의 소나무에서 눈가루가 흩날린다.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에서 출발, 소황병산(小黃柄山. 1천3백28m)으로 가는 임도(林道)주위에는 정적이 감돈다.

'스윽- 스윽-'.

임도 위의 설면(雪面)을 스치는 스키 플레이트의 소리가 정적을 깬다.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산새 소리.

레저 전문업체인 넥스프리(http://www.nexfree.com)를 통해 '산악 스키'를 배우는 스키어 6명이 임도 위를 미끄러져 지나가고 있다.

자연 상태의 산악지대에서 즐기는 '산악 스키'(back-country ski)는 스키를 타는 재미 이외에도 조용한 설산(雪山)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스키를 타고 하는 산행(山行)인 셈이다.

산악스키를 하려면 '등행'(登行)의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내리막은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내려가면 그만이지만 오르막은 스키를 신은 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산악 스키는 부츠 뒤꿈치쪽의 바인딩이 플레이트에서 들리도록(lifting)돼 있는 것이 슬로프를 활강하는 일반스키와 다른 점이다. 물론 바인딩이 플레이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시킬 수도 있다.

*** 겨울숲 가르며 스키산행

등행할 때는 '직선 스트라이드'주법을 주로 쓴다. 플레이트가 설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며 뒤꿈치를 들어 미끄러지듯 플레이트를 앞으로 내딛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다.

기자가 일행을 따라 가다보니 어느새 등줄기에 비지땀이 흐른다. 산악 스키 등행을 하다보면 시간당 8백㎈ 이상이 소모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동작 때문에 발목 부분이 저려오다가 서서히 적응 된다. 등산화를 신고 걷는 것보다 더 빠르게 임도를 통과한다.

오르막을 지날 때 플레이트가 뒤로 미끄러지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플레이트 밑바닥에 '클라이밍 스킨'(climing skin)이라는 나일론 소재의 테이프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스킨'은 카펫처럼 한 방향으로는 잘 미끄러지나 그 반대 방향으로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돼 있다. 접착식 또는 고정식으로 플레이트에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다.

어느덧 임도를 벗어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플레이트가 10~20㎝ 정도 내려 앉을 뿐 설면 밑바닥까지 빠지지는 않는다. 체중이 플레이트에 분산되기 때문이다.

플레이트를 벗고 부츠 바람으로 눈밭을 디뎌 보았다. 무릎까지 눈속으로 푹푹 빠진다. 스키를 신지 않고 등산화 차림으로는 걷기 어려운 구간이다.

산악 스키 매니어인 조흥식(54.제조업.충남 연기군 조치원읍)씨는 "플레이트가 눈속으로 깊이 빠지고 때로는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 산악스키의 묘미"라며 예찬론을 펼친다.

또 "제대로 맛을 보면 스키장에서 열번 타는 것보다 산악 스키 한번 타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리프트를 타고 슬로프를 올라가 시원하게 바람을 맞으며 내려오는 활강도 산악 스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스키의 발상지인 북유럽과 알프스 산악 지역에서는 지금도 많은 스키어들이 산악 스키를 즐긴다. 프랑스 샤모니 지방에는 1백80년이나 된 '국립 스키등산학교'가 있을 정도다.

*** 소황병산.한라산서 즐겨

만년설이 적고 잡목이 많은 한국은 산악 스키가 활성화하기는 어려운 여건이다.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올 때 키 작은 관목이 눈속 깊이 파묻히는 한라산 장구목 일대, 산자락에 목초지가 넓게 자리잡은 소황병산 정도가 산악 스키를 흉내내 볼 수 있는 곳이다. 분단 이전에는 산악인들이 스키를 타고서 금강산을 내려왔다고 전해진다.

아쉬움을 참으며 산 속으로 발길을 향한다. 길은 험하고 눈밭은 깊어진다. 잘 다져진 슬로프를 내려오는 활강과 달리 산악 스키에는 위험도 따른다. 고도에 따라 설질(雪質)이 다르고 슬로프 주변에는 키 큰 나무들도 서 있다. 바위가 있는 험한 구간은 스키를 벗고 산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아직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신설(新雪)이 스키어를 기다리고 있다. 스키어들은 인파도, 소음도 없는 설산의 품을 찾아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산악스키 배우려면

넥스프리가 올 겨울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산악스키 학교를 열고 있다. 교육은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한국콘도에서 3박4일간 이뤄어지며 인근 소황병산에서 실습을 한다.

참가비는 1인당 28만원이다. 이달 30일과 2월 6·20일 세차례 교육이 시작된다. 02-753-8004.

소황병산=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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